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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8일 묵상] 사사기 19장 11-21절, 아무도 문을 열지 않았다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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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19장 11-21절, 아무도 문을 열지 않았다 사사기 19장 11-21절을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 설교를 위한 성경 본문 연구 보고서 사사기 19장 11-21절, 신앙의 문은 열려 있습니까 - 매일성경 큐티 10분 새벽설교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293장, 주의 사랑 비칠 때에 새 찬송가 455장, 주님의 마음을 본받는 자 서론 여러분, 길 한복판에 사람이 앉아 있는데도 못 본 척 지나친 적이 있습니까? 눈은 분명히 마주쳤는데 마음속에서 얼른 계산부터 합니다. 괜히 나섰다가 일이 커지면 어쩌지. 누군가 돕겠지. 저도 이런 본문 앞에서는 쉽게 남을 꾸짖지 못하겠습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전화를 미루고, 형편이 뻔히 보이는데도 모른 척한 얼굴들이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새벽에 말씀을 펴 놓고도 마음 한쪽이 부끄러워집니다. 기브아 사람들의 얼굴이 낯설지 않습니다. 내 얼굴도 그들 사이에 보입니다. 레위인 일행은 여부스를 지나 기브아로 갑니다. 여부스는 이방인의 성읍이고, 기브아는 베냐민 지파의 성읍입니다. 그래도 하나님의 백성이 사는 곳이 낫겠지. 그런 기대였을 겁니다. 그런데 해가 지도록 아무도 문을 열지 않습니다. 먹을 것이 없는 여행자들도 아니었습니다. 짚도 있고 양식도 있고 포도주도 있었습니다. 잠자리 하나면 됐습니다. 그 작은 자리마저 내어 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기브아의 죄는 요란한 함성보다 먼저, 조용한 외면에서 시작됐습니다. 본론 1. 왕이 사라진 마음은 이웃을 외면합니다 사사기는 이 시대를 한 문장으로 진단합니다. 제가 사사기 21장 25절을 읽겠습니다. 사사기 21:25,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왕이 없다는 말은 왕궁이 비었다는 이야기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말씀보다 내 형편이 앞섰고, 이웃의 고통보다 내 평안이 더 소중해졌습니다. 그러자 사람을 보면서도 짐으로만 여기게 됐습니다. 기브아 사람들도 나름의 이유는 있었을 겁니다. 하루 종...

[10월 6일 묵상] 사사기 18장 21-31절, 조용히 해, 안 그러면 다친다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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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18장 21-31절, 조용히 해, 안 그러면 다친다 사사기 18장 21-31절을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 설교를 위한 성경 본문 연구 보고서 사사기 18장 21-31절, 불안해서 쥐어짠 힘이 인생을 무너뜨릴 때 - 매일성경 큐티 10분 새벽설교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150장, 갈보리산 위에 새 찬송가 461장, 십자가를 질 수 있나 서론 살면서 언제 가장 화가 치솟습니까? 내 뜻대로 일이 안 풀릴 때입니다. 뒷바라지한 자식이 내 뜻과 다른 길을 가거나, 수십 년 함께 산 배우자가 내 마음을 몰라줄 때 불쑥 목소리가 커집니다. 내가 어떻게 했는데 감히 나를 무시해? 서운함과 분노가 턱밑까지 차오릅니다. 나이 들수록 사회적 힘이 줄어들면 통제에 대한 집착은 오히려 더 독해집니다. 내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뭘 꺼내 듭니까? 매서운 눈빛, 차가운 침묵, 상대를 죄인 만드는 독설입니다. 완력으로 꽉 쥐어짜는 강압입니다. 교회 안에서도 내 신앙 연조와 직분을 앞세워 사람들을 쥐고 흔들려 합니다. ‘다 너 잘되라고 하는 말’이라 포장하지만, 실상은 내 손에 쥐어야 직성이 풀리는 통제욕입니다. 뜻대로 안 되면 폭력적인 강압을 휘두르는 것, 이것이 감출 수 없는 우리의 민낯입니다. 본론 1. 힘으로 세운 인간의 탑은 반드시 허물어집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우리의 밑바닥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단 지파는 하나님께 약속받은 땅이 있었지만, 아모리 족속이 두려워 싸워보지도 못하고 산지로 쫓겨났습니다. 사명 앞에서 도망쳤던 그들이 어디로 눈을 돌립니까? 북쪽 변방에서 평화롭게 살던 힘없는 라이스 족속이었습니다. 무장한 육백 명이 미가의 집을 들이쳐 신상과 에봇을 쓸어 담고 제사장까지 가로챕니다. 힘으로 남의 것을 약탈한 것입니다. 신상을 빼앗긴 미가가 이웃들과 쫓아와 울부짖습니다. 24절에서 미가는, “너희가 내가 만든 신들과 제사장을 빼앗아 갔으니 내게 이제 남은 것이 무엇이냐?”라고 호소합니다. 은을 녹여 만든 신상이 인생을 지켜줄 줄 알았는데, 힘센 자들이 빼앗...

[9월 28일 묵상] 사사기 13장 1절-14절, 부르짖지 않았는데 하나님이 오셨습니다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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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13장 1절-14절, 부르짖지 않았는데 하나님이 오셨습니다 사사기 13장 1절-14절, 답을 더 구하기 전에 - 매일성경 큐티 10분 새벽설교 사사기 13장 1-14절을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 설교를 위한 성경 본문 연구 보고서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390장, 예수가 거느리시니 새 찬송가 545장, 이 눈에 아무 증거 아니 뵈어도 서론 매일 새벽 4시 정도에 일어납니다. 그리고 교회의 사무실로 올라 옵니다. 아직 어두운데 집을 나서다 보면 가끔 그런 생각이 듭니다. 세상은 다 잠든 것 같은데, 빵집 안에는 벌써 불이 켜져 있습니다. 주인은 반죽을 하고, 오븐을 달구고, 손님이 오기 전에 빵을 굽습니다. 손님은 아침에 문을 열고 들어가 따뜻한 빵을 보면서 그제야 일이 시작된 줄 압니다. 그런데, 사실이 아닙니다. 우리가 문을 열기 전부터 누군가는 일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일도 그럴 때가 많습니다. 우리가 알아차리기 전부터, 기도 제목을 제대로 말하기 전부터, 하나님은 이미 움직이고 계십니다. 오늘 본문의 이스라엘은 참 답답한 모습입니다. 블레셋의 손에 눌려 지낸 세월이 사십 년입니다. 사십 년이면 갓난아이가 중년이 될 만큼 긴 시간입니다. 이전에는 어려움이 닥치면 뒤늦게라도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는 그 부르짖음조차 나오지 않습니다. 고통에 익숙해진 것입니다. 블레셋의 지배도 익숙하고, 하나님 없이 사는 형편도 익숙해졌습니다. 아픈데 아프다고 말하지 않는 상태. 그것이 그 시대의 영적 현실이었습니다. 이제 죄의 순환이 되풀이되는 수준을 넘어 점점 깊어지는 모습입니다. 본론 그런데, 하나님께서 먼저 찾아오셨습니다. 이스라엘이 회개운동을 시작해서가 아닙니다. 마노아가 구원자를 달라고 철야기도를 한 것도 아닙니다. 한 이름 없는 여인, 아이를 낳지 못해 오랜 세월 마음이 무너졌을 여인에게 여호와의 사자가 먼저 찾아왔습니다. 하나님은 백성이 부르기도 전에 구원의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오늘 새벽 우리가 붙들 말씀도 여기에 있습니다. 내...

[9월 16일 묵상] 사사기 7장 15절-25절,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라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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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7장 15절-25절,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라 사사기 7장 15-25절을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 승리의 방법보다 승리의 주체가 누구인가에 대한 연구 보고서 사사기 7장 15절-25절, 깨어진 질그릇에 담긴 십자가의 영광 - 매일성경 큐티 10분 새벽설교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348장, 마귀들과 싸울지라 새 찬송가 420장, 너 성결키 위해 서론 저는 성경을 읽을 때마다, 여호수아가 이끌었던 여리고 성 전투가 참 기이하게 느껴집니다. 상식적으로 거대한 성벽을 무너뜨리려면 성벽을 부술 단단한 공성망치를 준비하거나 사다리를 타고 성벽을 기어올라야 맞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군사들에게 전혀 엉뚱한 명령을 내리십니다. 엿새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그저 성 주변을 침묵 속에 걸으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일곱째 날, 제사장들의 나팔 소리와 함께 백성들이 한목소리로 큰 함성을 지르자, 철옹성 같던 그 견고한 벽이 힘없이 주저앉았습니다. 칼 한 번 휘두르지 않고, 인간의 전략을 완전히 내려놓았을 때 하나님이 일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속에 등장하는 미디안 연합군은, 숫자로만 본다면 무려 13만 5천 명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모습은 골짜기를 가득 채운 메뚜기 떼와 같습니다. 반면에 기드온 곁에 남은 사람은 고작 300명이었습니다. 비율을 계산하면, 450대 1의 싸움이었습니다. 상식적으로는 도무지 이길 수 없는, 절망 그 자체였습니다. 본론 그런데 하나님은 바로 그 절망스러워 보이는 전쟁의 현장 한가운데서, 완전히 새로운 승리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오늘 이 새벽, 하나님은 기드온의 300용사를 통해 우리에게 두 가지 깊은 은혜의 원리를 들려주십니다. 1. 내 완고한 자아가 깨어져야 합니다. 오늘 본문 16절을 보면 기드온이 300명의 용사에게 나누어 준 무기가 나옵니다. 16절을 제가 읽겠습니다. 사사기 7:16, 삼백 명을 세 대로 나누어 각 손에 나팔과 빈 항아리를 들리고 항아리 안에는 횃불을 감추게 하고 여러분! 이게 뭘까요? 300명...

[9월 9일 묵상] 사사기 4장 11절-24절, 드보라와 바락과 야엘, 진짜 주인공은 누구인가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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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4장 11절-24절, 드보라와 바락과 야엘, 진짜 주인공은 누구인가 사사기 4장 11절-24절을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 연약한 말뚝으로 일구어낸 구원 사사기 4장 11절-24절, 구원을 이루어 나가시는 하나님 - 매일성경 큐티 10분 새벽설교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204장, 주의 말씀 듣고서 새 찬송가 449장, 예수 따라가며 서론: 우리의 구원은 누구의 손에 달려 있는가? 몇 해 전, 건강검진을 한 이후에 병원에서 방문하라는 전화를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두려운 마음에 왜 가야하는지 물었더니, 검진 결과를 설명하고 의사 선생님을 무조건 만나야만 한다는 답을 들었습니다. 그 전화를 받은 이후부터 병원에 가서 의사 선생님을 만나서 설명을 들을 때까지, 마음에는 계속해서 염려와 근심이 남았었습니다. 다행히, 건강을 유지하려면 이런 저런 운동을 꼭 해야 한다는 말씀만을 듣고 왔었지만, 며칠 동안 두려워 했던 그 때가 지금도 기억이 납니다. 우리의 삶에는 새벽에 눈을 뜨자마자 어제의 걱정이 다시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병원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일, 좀처럼 풀리지 않는 자녀 문제, 재정적인 문제, 사람 사이에 생긴 서운함 같은 것들이 우리 마음을 무겁게 누르곤 합니다. 또, 기도하러 나왔는데도 마음 한쪽은 자꾸 이런 저런 계산합니다. 내가 가진 것으로 이 일을 감당할 수 있을까하고 말입니다. 오늘 본문의 이스라엘도 비슷한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그들 앞에는 시스라가 거느린 철 병거 구백 대가 버티고 있었습니다. 철 병거 하나도 두려운데 무려 구백 대였습니다. 다볼산 아래를 내려다보던 이스라엘 군사들의 마음이 어땠을까요. 마음이 착잡하고 염려로 가득 찼을 겁니다. 본론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전쟁의 승패는 사람의 수나 무기의 차이에 달려 있지 않다는 사실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락보다 먼저 나아가셨고, 시스라의 군대와 병거를 혼란에 빠뜨리셨습니다. 드보라는 말씀을 전했고, 바락은 그 말씀을 붙들고 산에서 내려갔으며, 야엘은 자기 장막...

[8월 29일 묵상] 이사야 37장 21절-38절, 왜 하나님은 예루살렘을 구원하셨는가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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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37장 21절-38절, 여호와의 열심이 베푸신 온전한 승리 - 매일성경 큐티 10분 새벽설교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310장, 아 하나님의 은혜로 새 찬송가 150장, 갈보리산 위에 서론: 우리는 무엇으로 구원받는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공로를 내세우려 할 때가 있습니다. 내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내가 맡은 일을 잘 해냈을 때나 사람들이 칭찬할 때, 나도 모르게 어깨가 으쓱해질 때가 있다는 것이지요. 또,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했고, 열심히 봉사했으며, 나름대로 선하게 살아왔기에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저도 교회 행사를 문제 없이 잘 진행 했을 때, 하나님의 은혜 덕분이라고 말하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내가 철저하게 준비를 잘 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남아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우리가 무엇으로 구원을 받게 되는지에 대해 분명히 말씀합니다. 성경은 우리의 노력이나 행위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얻는다라고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본론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구원하시겠다고 약속하시면서 그 이유를 백성들의 의로움에서 찾지 않으심을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오히려 "나를 위하며 내 종 다윗을 위함이라"(사 37:35)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구원이 인간의 공로가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언약과 은혜에 근거한다는 사실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1. 예루살렘은 구원을 받을 자격이 없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시면, 앗수르의 산헤립이 예루살렘을 철저하게 포위했음을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남유다와 예루살렘의 운명이 마치 풍전등화와 같은 상황이었습니다. 이같은 위기의 상황에서,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을 구원하시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의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루살렘 백성들이 의로웠기 때문인가요?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완전히 순종했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오...

[8월 28일 묵상] 이사야 37장 1절-20절, 절망의 편지를 받았던 날에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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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370장, 주 안에 있는 나에게 새 찬송가 406장, 곤한 내 영혼 편히 쉴 곳과 이사야 37장 1절-20절, 절망의 편지, 소망을 주는 주의 십자가 - 매일성경 큐티 10분 새벽설교 이사야 37장 1절-20절을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 절망의 편지를 은혜의 제단 위에 펼칠 때 서론: 압도적인 현실과 무력한 인간 몇 해 전, 주일 새벽에 갑자기 오른쪽 발가락에 극심한 통증이 생겼습니다. 양말도 신발도 신을 수 없었고 걷는 것도 힘이 들 정도였습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이 그저 통증으로 고통스러워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게다가 주일이니 병원을 갈 수도 없는 상황이었기에, 주일을 정신 없이 보낼 수 밖에 없었습니다. 통풍이라는 질병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때때로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 앞에 서게 됩니다. 예상치 못한 질병이 찾아 와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경우를 맞이합니다. 무너지는 경제적 형편, 깨어진 관계와 같은 문제들은 마치 거대한 파도처럼 우리를 덮쳐 오고, 우리는 무기력하게 서 있을 수 밖에 없기도 합니다. 본론 히스기야 왕과 유다 백성에게 앗수르는 감당할 수 없는 압도적인 현실의 파도와 같았습니다. 당시 세계를 지배하던 최강의 제국 앞에서 유다는 너무나 작고 무력해 보였습니다. 눈에 보이는 현실만 바라본다면 절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문제의 크기에 압도될 때, 우리는 그 문제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크기를 잊어버립니다. 그러나 믿음은 현실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보다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오늘 본문은 위기보다 크신 하나님의 통치를 바라보게 합니다. 1. 기도는 현실을 하나님 앞으로 가져가는 행동입니다. 위기를 만난 히스기야는 무엇을 하였습니까? 군사력을 점검하거나 외교적 해법을 찾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을 위협하는 현실을 그대로 들고 하나님께 나아갔습니다. 14절을 우리 함께 읽겠습니다. 이사야...

[7월 28일 묵상] 이사야 10장 5절-19절, 내 손 안의 도끼를 자랑하지 마십시오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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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214장, 나 주의 도움 받고자 새 찬송가 254장, 내 주의 보혈은 서론: 우리는 무엇을 바라보며 두려워하고 있습니까? 오늘도 어김 없이 주님만을 바라보며 이 자리까지 나오신 성도 여러분! 혹시 주님의 은혜를 사모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 무거운 인생의 돌덩이를 안고 나오시지는 않았습니까? 오늘 본문의 남유다 백성 역시 숨 막히는 공포 속에 있었습니다. 당대 절대 강국 앗수르가 주변국을 무너뜨리고 예루살렘 성벽 바로 앞까지 바짝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거대한 제국의 막강한 군사력 앞에서 조그마한 나라에 불과한 유다는 떨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도 닮아 있습니다. '직장 상사의 혹독한 압박', '갑작스러운 재정 문제', '통제할 수 없는 일상의 시련들' 앞에 서면 우리는 금세 무력해집니다. 세상의 힘은 태산처럼 커 보이고 나는 작아 보여 두려움이 찾아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원망하기도 합니다. 하나님, 왜 저 거친 세상 권력과 고난을 내버려 두십니까? 반대로 일이 잘 진행되면 어떤 생각을 하게 됩니까? 마치 내가 이룬 것처럼 우쭐해지며 교만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두려워하는 우리와 교만한 우리 모두에게 역사의 진짜 주인이 누구인지 똑똑히 선언하고 있습니다. 본론 1. 세상의 거대한 힘도 하나님의 손에 들린 도구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5절에서 뜻밖의 선언으로 말씀을 시작하십니다. 5절을 보십시오. 이사야 10:5, 앗수르 사람은 화 있을진저 그는 내 진노의 막대기요 그 손의 몽둥이는 내 분노라 승리를 거두던 앗수르 제국이었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단지 '내 손에 들린 작은 막대기(שֵׁבֶט, 쉐베트)'라 부르십니다. 그들이 잘나서 세상을 정복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정결하게 만드시려 잠시 징계의 몽둥이로 사용하셨을 뿐입니다. 하지만 앗수르는 이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7~8절을 보면 그들은 부와 권력이 자기 능력인 줄 착...

[5월 27일 묵상] 창세기 48장 8절-22절, 엇갈린 손 위에 임한 은혜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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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301장, 지금까지 지내온 것 새 찬송가 310장, 아 하나님의 은혜로 서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복되고 거룩한 아침, 하나님의 따뜻한 품으로 나오신 여러분 모두를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이 이른 아침, 주님의 보좌 앞으로 나아와 무릎 꿇은 여러분의 심령 위에, 하늘의 위로와 평강이 가득히 흘러넘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여러분, 세상을 살아가시면서 내가 정말 정성껏 준비하고 세운 계획이 한순간에 헝클어져 버린 경험이 있으신가요? 아마 한두 번쯤은 다들 그런 답답한 순간을 마주하셨을 줄 압니다. 직장에서 밤낮으로 고심하며 준비했던 프로젝트가 예상치 못한 변수로 틀어질 때도 그렇고,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키우는 자녀의 삶이 내 뜻대로 흘러가지 않을 때도 그렇지요. "내가 생각한 내 아이의 인생 행로는 이 길인데...", "이때쯤이면 이런 열매를 맺어야 하는데..." 하며 우리가 밤잠을 설쳐가며 다듬어 놓은 인생의 설계도가 보기 좋게 어긋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 마음에는 덜컥 섭섭함이 찾아옵니다. "하나님, 왜 제 뜻대로 일해 주지 않으십니까? 왜 제 길을 이렇게 꼬이게 만드십니까?" 하고 가슴을 치며 탄식하게 되지요.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말씀에는요, 우리가 인생에서 겪는 이 당혹스러운 순간과 너무나도 닮아 있는 한 장면이 등장합니다. 바로 야곱의 인생 마지막 순간입니다. 요셉은 이제 눈이 어두워 앞이 잘 보이지 않는 늙은 아버지 야곱을 찾아옵니다. 그리고 자신의 사랑하는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아버지 앞에 데리고 나아와 축복해 달라고 간청합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요셉은 참 사려 깊고 모든 일에 철저한 사람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축복 기도를 할 때 헷갈리지 않으시도록 만반의 준비를 합니다. 당시 이스라엘의 전통에서 '오른손'은 힘과 권력, 그리고 장자의 명분과 갑절의 축복을 상징했습니다. 반면 '왼손'은 ...

[5월 13일 묵상] 창세기 41장 25절-36절, 영적 기근을 대비하는 지혜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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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369장, 죄짐 맡은 우리 구주 새 찬송가 365장, 마음속에 근심 있는 사람 서론: 역사의 주관자를 향한 신뢰의 아침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새벽에도 영적으로 깨어 기도하며 마음의 모든 근심들과 짐들을 주님께 내려 놓는 시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 인생을 가만히 돌아보면, 참으로 기막힌 일들이 많습니다. 어떤 때는 하는 일마다 술술 풀리는 '풍년'의 계절을 지나는 것 같다가도, 또 어떤 때는 예기치 못한 사고나 질병, 자녀의 문제로 앞이 캄캄해지는 '흉년'의 파도가 우리를 덮치기도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역사적으로 보아도 그렇습니다. 우리 대한민국은 참으로 처절한 흉년의 시기를 지나왔습니다. 1950년대 전쟁의 폐허 속에서 우리 부모님 세대는 당장 먹을 쌀 한 톨이 부족한 고통을 겪으셨습니다. 하지만 그분들은 주저앉지 않으셨지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라는 원대한 준비를 통해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번영의 기초를 닦으셨습니다. 쌀 한 톨을 아껴 고속도로를 놓고 공장을 세웠던 그 '준비성'이 있었기에 우리 자녀들이 이만큼 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본론 오늘 본문은 바로 그 ' 준비의 지혜 '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죄수의 신분에서 순식간에 제국의 운명을 짊어진 총리로 우뚝 선 요셉의 이야기는, 한 개인의 성공 신화이기에 앞서서 중요한 교훈을 우리에게 전해 줍니다. 바로 역사의 주관자가 하나님이심을 온 세상에 선포하는 말씀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이 새벽에 이 진리를 마음에 꼭 새기시길 바랍니다. " 하나님은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이며, 성도는 그분의 지혜로 영적 흉년을 대비해야 한다 "는 사실입니다. 특히 인생의 해가 서산으로 넘어가며 노년을 준비하시는 성도님들께 권면합니다. 지금은 세상의 재물과 명성을 쌓는 시간보다, 하나님 나라의 창고에 '기도의 눈물'과 '말씀의 확신'을 저축해야 할 때인 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