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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4일 묵상] 고린도전서 9장 1절-23절, 복음을 위해 내려놓는 자유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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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497장, 주 예수 넓은 사랑 새 찬송가 449장, 예수 따라가며 서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새벽 공기가 아직 차갑지요. 눈은 떴는데 마음은 아직 무거울 때가 있습니다. 어제 못 푼 문제, 쌓인 피로, 관계의 서운함, 생활비 걱정, 자녀 문제, 건강 염려... 이런 삶의 문제들이 아침부터 마음을 꽉 채울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 마음속에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불만들이 있습니다. “내가 왜 이것까지 해야 하지?” “내 권리도 좀 지키고 싶다.” “나도 힘든데 왜 내가 먼저 내려놔야 하지?” 오늘 바울도 바로 그와 같은 상황 속에 있는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편지를 통하여 권면합니다. 오늘 본문은 사도로서의 자신의 권리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본문에서 자신의 권리만을 강조하지 않습니다. 더 중요한 본문의 핵심은, 복음 앞에서 내 자유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를 묻는 말씀입니다. 바울에게도 권리가 있었습니다. 먹고 마실 권리, 지원받을 권리, 사도로 인정받을 권리 말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 권리를 붙들지 않고, 복음을 위해 모든 권리를 내려놓습니다. 성경에도 그런 장면이 많습니다. 다윗은 사울을 죽일 기회가 있었지만 자기 손으로 권리를 행사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하늘 영광을 버리고 종의 자리로 내려오셨습니다. 오늘 바울은 바로 그 예수님의 길을 따라갑니다. 우리의 연약한 인간적 본성은 이렇습니다. 우리는 자유를 사랑하지만, 그 자유를 사랑으로 쓰기보다 자기중심으로 쓰기 쉽습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은 우리를 정죄하려는 목적으로 쓰여진 편지가 아니라, 우리를 다시 복음 앞으로, 다시 예수님의 마음 앞으로 나아오라는 권면의 말씀으로 쓰여진 편지입니다. 본론 1. 복음은 내 권리를 부정하지 않고, 그 권리를 붙드는 방식을 바꿉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자신이 사도라고 분명히 말합니다. 그는 권리가 없는 사람이 아닙니다. 권리가 있는데도 쓰지 않은 사람입니다. 왜 그럴까요? 12절을 우리 함께 읽겠습니다. 고린도전서 9:12,...

[4월 8일 묵상] 요한복음 21장 15절-25절,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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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314장,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새 찬송가 323장, 부름 받아 나선 이 몸 서론: 실패의 밤이 지나고 찾아온 은혜의 새벽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고요한 새벽, 주님의 전을 찾은 여러분의 마음은 어떠하십니까?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우리는 새로운 소망을 품기도 하지만, 때로는 어제 무너졌던 나의 연약함 때문에 무거운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기도 합니다. 직장 생활의 쳇바퀴 속에서 겪는 깊은 '번아웃(Burnout)', 가정에서 남편과 아내, 혹은 자녀에게 쏟아낸 날 선 감정들로 인한 후회, 그리고 '내가 과연 진짜 그리스도인답게 살고 있는가?' 하는 뼈아픈 ' 자격지심 '과 ' 죄책감 '이 우리를 짓누를 때가 많습니다. 오늘 본문이 펼쳐지는 디베랴 바닷가(갈릴리 호수) 역시, 이처럼 짙은 절망과 실패의 냄새가 배어 있는 현장이었습니다. 역사적으로 이곳은 약 3년 전, 예수님께서 처음으로 제자들을 부르셨던 영광스러운 소명의 자리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베드로와 일곱 제자들은 그 영광을 뒤로한 채 옛 직업인 어부로 돌아가 밤새 그물을 던지고 있습니다. 수제자였던 베드로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도망쳤고, 대제사장의 뜰에 피워진 숯불 앞에서는 예수님을 저주하며 세 번이나 부인했습니다. 그 치명적인 영적 실패와 연약함이 베드로를 짓눌렀고, 스스로를 사명자의 자리에서 파면시켜 갈릴리의 밤바다로 숨어들게 한 것입니다. 우리 역시 내 안의 죄악과 연약함을 마주할 때, 하나님을 피하여 영적인 도피처로 숨으려는 본능이 있습니다. 본론 그러나 밤이 새도록 아무것도 잡지 못한 그 텅 빈 바닷가, 가장 춥고 외로운 그 새벽에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먼저 찾아오셨습니다. 친히 숯불을 피우고 조반을 지어 기다리신 주님은, 오늘 이 새벽 예배의 자리에 상한 심령을 안고 나온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다가오십니다. 실패한 우리를 찾아오셔서 다시 일으켜 세우시는 주님의 세밀한 음성을 듣는 아침이 되기를 소망합...

[4월 7일 묵상] 요한복음 21장 1절-14절, 와서 조반을 먹으라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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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288장, 예수를 나의 구주 삼고 새 찬송가 382장, 너 근심 걱정 말아라 서론: 밤새 던진 빈 그물과 우리 인생의 새벽 여러분, 1914년 남극 탐험에 나섰던 어니스트 새클턴(Ernest Shackleton)의 이야기를 아십니까? 그의 배 '인듀어런스호'가 얼음에 갇혀 파손되었을 때, 그는 영하 수십 도의 추위 속에서 27명의 대원과 함께 634일간 사투를 벌였습니다. 불가능해 보였던 조난 상황에서도 그는 단 한 명의 희생자 없이 전원을 구조해냈습니다. 훗날 대원들은 믿음으로 고백했습니다. "가장 절망적인 순간, 우리 곁에는 보이지 않는 '스물 여덟 번째 인물'이 함께 걷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보이지 않는 존재가 그들에게는 생존의 희망이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마주한 성경 본문 속 제자들의 상황도 이와 비슷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두 번이나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무력감과 공허함이 가득했습니다. 베드로는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고 말하며 다시 옛 생활의 터전인 디베랴 바다로 돌아가 버립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인간의 근원적인 연약함입니다. 사명을 받았으나 현실의 벽 앞에서 다시 익숙한 과거의 습관과 죄성으로 도피하려는 연약함이 우리 모두에게 있습니다. 본론: 빈 배를 채우시고 영혼을 먹이시는 은혜 여러분, 어제 하루 어떠셨습니까? "어제 하루도 정신없이 직장에서 치이고, 자녀들과 실랑이하고, 텅 빈 통장 잔고나 풀리지 않는 관계 때문에 밤잠을 설친 채 이 새벽 제단에 나오지는 않으셨나요?" 밤새 그물을 던졌지만 건져 올린 것은 차가운 바닷물뿐이었던 제자들의 모습이, 어쩌면 성실하게 살았지만 아무런 열매가 보이지 않아 낙심한 우리의 모습과 참 닮아 있습니다. 하지만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빈 그물을 씻고 있는 바로 그 절망의 해변에, 부활하신 주님이 이미 먼저 와 계십니다. 1. 내 방식의 수고가 멈춘 곳에서 ...

[3월 6일 묵상] 요한복음 11장 1절-16절, 사랑으로 기다리시는 나의 하나님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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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하는 찬송 새 찬송가 435장, 나의 영원하신 기업 새 찬송가 488장, 이 몸의 소망 무언가 서론: 기다림이 사라진 시대, 하나님의 '읽씹'? 현대인의 인스탄트식 사랑은 모든 것을 '즉시'와 '속도'로 평가하곤 합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상대가 원하는 것을 바로 들어주고, 메시지를 보내면 1분 안에 답장이 와야 하며, 배달 음식조차 도착 예정 시간을 넘기면 사랑의 온도가 식었다고 오해하는 시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이러한 '인스탄트 공식'을 대입합니다. "주님, 내가 이렇게 간절히 기도하고 사랑을 고백하는데, 왜 내 삶의 문제는 '배송 지연' 상태입니까?"라고 묻습니다. 오늘 본문의 마르다와 마리아도 그랬을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가장 사랑하시던 가족이었습니다. 오빠 나사로가 죽어간다는 급보를 보냈을 때, 그들은 당연히 주님이 모든 일을 제쳐두고 달려오실 줄 믿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움직이지 않으셨습니다. 우리가 가장 절박할 때 느껴지는 하나님의 침묵은 마치 우리의 기도를 '읽고 무시하는(읽씹)' 냉담함처럼 다가오기도 합니다. 여러분, 혹시 오늘 새벽 "새벽 배송보다 늦은 하나님의 응답" 때문에 상처받은 마음으로 이 자리에 앉아 계시지는 않습니까? "남들은 다 잘 풀리는 것 같은데, 왜 내 인생의 골든타임만 속절없이 흘러가는가"라는 박탈감이 우리를 괴롭힐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충격적인 진실을 알려줍니다. 주님은 사랑하지 않아서 늦으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깊이 사랑하시기 때문에 '기다림'이라는 선물을 준비하셨다는 사실입니다. 본론: 위기를 영광으로 바꾸는 세 가지 하늘 원리 1. 사랑하기 때문에 기다리게 하십니다. 오늘 본문의 5절과 6절에는, 어쩌면 답답하게 느껴지는 예수님의 모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5절과 6절을 보십시오. 요한복음 11:5-6, ...

요한계시록 11장 1절-13절, 두 증인이 받은 사명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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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6일의 매일성경 큐티 본문인 요한계시록 11장 1절-13절에 관한 강해 새벽설교입니다. 세상의 핍박 앞에 무력감을 느끼십니까? 순교자처럼 보였던 '두 증인'의 사명은 어떻게 하나님의 최종 승리로 역전될까요? 고난받는 교회의 사명과 하나님의 보호하심, 그리고 모든 것을 압도하는 영광스러운 승리의 메시지를 통해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흔들리지 않는 소망을 붙드시기 바랍니다. 요한계시록 11장 1절-13절, 두 증인이 받은 사명 참고할 글 요한계시록 11장 1절-13절, 두 증인, 세상의 조롱을 넘어 하늘의 영광으로 - 매일성경 큐티 10분 새벽설교 요한계시록의 수수께끼: 요한계시록 11장 3절의 "두 증인"의 정체에 대한 신학적 탐구 함께 하는 찬송 새 찬송가 348장, 마귀들과 싸울지라 새 찬송가 353장, 십자가 군병 되어서 서론 요즘과 같이 경제가 어렵고 모든 것이 불확실한 세상 속에서, 우리 모두는 성공적인 삶, 영향력 있는 삶을 꿈꿉니다. 편안하고 안정되며, 세상으로부터 인정받는 삶을 원합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 보고자 하는 요한계시록 11장 1절-13절의 말씀은 우리의 이런 기대와는 전혀 다른 그림을 보여줍니다. 세상의 조롱과 핍박 속에서 죽임 당하고, 그 시체가 길거리에 버려지는 처참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처참한 상황이 과연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원하시는 삶의 모습일까요? 이것이 교회의 사명일까요? 본론 오늘 말씀은 혼란스럽고 두렵게 느껴질 수 있지만, 사실은 이 어두운 세상 속에서 교회가 붙들어야 할 가장 영광스러운 사명과 소망을 담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붙들어야만 할 핵심은 “교회의 사명은 성령의 능력에 의지해 고난의 길을 걸으며, 하나님의 궁극적인 승리와 보호하심을 확신하며 끝까지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 사명의 정체성, 과정, 그리고 궁극적인 소망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1. 증인의 정체성 - 측량된 백성, 성령의 사람 먼...

요한계시록 10장 1절-11절, 달콤하고도 쓴 작은 두루마리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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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5일의 매일성경 큐티 본문인 요한계시록 10장 1-11절 강해 새벽예배설교. 힘센 천사가 전한 '작은 두루마리'의 비밀을 아십니까? 입에는 꿀같이 단 구원의 기쁨과, 배에서는 쓰게 된 사명의 무게. 이 달고 쓴 말씀을 받은 요한처럼, 오늘 우리에게도 "다시 예언하라"는 주님의 명령이 주어졌습니다. 혼돈의 시대 속에서 성도가 감당해야 할 영광스러운 사명과 십자가의 길을 함께 묵상하며, 위로와 결단을 얻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요한계시록 10장 1절-11절, 다시 예언하여야 할 작은 두루마리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461장, 십자가를 질 수 있나 새 찬송가 323장, 부름 받아 나선 이 몸 서론 눈물의 선지자라 불렸던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부패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했던 선지자였습니다. 예레미야는 "내가 주의 말씀을 얻어 먹었사오니 주의 말씀은 내게 기쁨과 내 마음의 즐거움이오나"(렘 15:16)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이 고백을 통하여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것은 큰 기쁨임을 노래하였습니다.  하지만,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한 결과, 자신의 민족인 이스라엘은 조롱과 핍박을 하였습니다. 심지어 당시 유대 왕들에게는 죽음의 위협까지 당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의 사도 요한 역시 하나님의 말씀이 달고 쓴 것임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본론 오늘 본문은 여섯 번째 나팔과 일곱 번째 나팔 재앙 사이에 위치한 막간의 계시입니다. 이 계시에 따르면, 이 땅에 무서운 재앙이 임하게 되겠지만 하나님께서는 신실한 종들을 통해 구원의 역사를 멈추지 않으실 것입니다. 요한은 이 과정 속에서 힘센 천사가 전하는 작은 두루마리 책을 받아 먹게 됩니다. 그 책을 먹으니 요한의 입에는 꿀같이 달았지만, 배에는 쓰게 되었다고 요한은 고백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은 영혼을 살리는 기쁜 소식이지만, 동시에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사명은 십자가의 고난과 핍박을 감수해야만 하는 쓴 잔임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1...

역대상 19장 1절-20장 8절, 왕궁의 옥상에서 사명의 최전선으로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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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하면 됐다'는 영적 안일함이 내 신앙을 잠식하고 있습니까? 다윗이 전쟁터를 떠나 왕궁 옥상에 머물다 죄에 빠진 것처럼, 편안함은 우리의 가장 큰 적이 될 수 있습니다. 6월 19일 매일성경 큐티 본문 인 역대상 19:1-20:8에 대한 새벽예배설교를 통해, 미지근한 신앙의 위험성을 깨닫고 성령의 불로 다시 타올라 사명의 최전선으로 나아가는 계기가 되길 소망합니다. 역대상 19장 1절-20장 8절, 왕궁의 옥상에서 사명의 최전선으로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273장, 나 주를 멀리 떠났다 새 찬송가 352장, 십자가 군병들아 서론: 가장 위험한 편안함 이 시간에 잠시 동안 우리의 신앙생활을 돌아보았으면 합니다. 혹시 ‘이 정도면 괜찮다’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으십니까? 주일 예배에 빠지지 않고, 헌금도 하고, 큰 죄를 짓지 않으니 나는 괜찮은 그리스도인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이고 있지는 않으십니까? 우리는 모두 편안함을 추구합니다. 그러나 만약 그 편안함이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열정을 식게 하고, 우리를 영적으로 깊은 잠에 빠뜨리는 독이 되고 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본론 오늘날 교회 안에 만연한 가장 위험한 우상은 바로 ‘안락함’이라는 우상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볼 역대기 말씀은 이 위험한 안일함의 대가가 얼마나 끔찍한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이 시간, 말씀을 통해 우리의 영적 주소를 정직하게 점검하고, 안락함이라는 달콤한 독에서 벗어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사명의 자리로 다시 달려 나가는 결단이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1. 승리 뒤에 찾아온 안일함의 덫 오늘 본문은 승리한 다윗 왕의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암몬과의 전쟁에서 다윗의 군대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눈부신 승리를 거둡니다. 요압 장군은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며 "여호와께서 선히 여기시는 대로 행하시기를 원하노라" (대상 19:13)고 고백했고, 하나님은 그 믿음에 응답하셨습니다. 문제는 바로 그 다음 해에 시작됩니다. 모든 왕들이 전쟁터로 나아가야 ...

사도행전 18장 1절-11절, 바울에게 아굴라 부부를 보내신 하나님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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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8일의 매일성경 묵상 본문은 사도행전 18:1-11로, 고린도에서 복음을 전하며 고군분투하던 바울에게 하나님께서 아굴라 부부를 보내 주신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의 반대로 낙심하던 바울은 같은 생업을 가진 아굴라 부부에게 큰 위로를 받았을 것입니다. 본문을 큐티하고 바울에게 동역자 아굴라 부부를 보내신 하나님이라는 주제로 새벽예배설교문을 작성하였습니다. 사도행전 18장 1절-11절, 바울에게 아굴라 부부를 보내신 하나님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90장, 주 예수 내가 알기 전 새 찬송가 382장, 너 근심 걱정 말아라 하나님은 동역자를 보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사명을 주실 때 홀로 감당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으십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에서 전도할 때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라는 동역자를 보내주신 것은 하나님의 섭리와 인도하심의 증거입니다. 우리의 삶에서도 믿음의 동역자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됩니다. 믿음의 동역자와 협력하여 사명을 감당하는 것은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우리는 홀로 싸우는 고독한 전사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사람들을 적절한 시기에 보내 주시며, 그들과 함께할 때 사명을 더 효과적으로 감당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믿음의 동역자와 협력하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를 따르는 길이며, 공동체 속에서 하나님의 일을 이뤄나가는 방법입니다. 어려움과 고독을 이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전도 사역을 감당할 때 동역자의 존재는 그에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고린도에서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를 만난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바울이 유대인과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할 때 많은 어려움과 반대에 직면했지만, 동역자들인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의 도움으로 위로를 얻고 그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함께 2절과 3절을 읽겠습니다. 사도행전 18:2-3, 아굴라라 하는 본도에서 난 유대인 한 사람을 만나니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한 고로 그가 그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

사도행전 15장 36절-16장 15절, 분열하는 지도자들, 순종하는 동역자들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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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매일성경 묵상 본문인 사도행전 15:36-17:15의 말씀은, 안디옥 교회의 지도자들인 바울과 바나바의 분열에 관한 내용과 실라와 디모데와 같이 순종하는 동역자들의 모습에 관한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모든 상황들 속에서, 이들은 성실하게 하나님의 사명을 이룹니다. 본문을 큐티하고 새벽예배설교문으로 정리하였습니다. 사도행전 15장 36절-16장 15절, 분열하는 지도자들, 순종하는 동역자들 서론 사도행전 15장 36절에서 16장 15절까지의 본문은, 초기 기독교 공동체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갈등과 화해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본문에서는 바울과 바나바가 1차 선교여행 후 다시 방문할 계획을 세우며 갈등이 발생하는 장면과, 그 후 바울이 실라와 함께 새로운 동역자들을 만나며 사역을 이어가는 모습이 그려집니다. 이 이야기는 교회가 성장하고 확장되는 과정에서 다양한 인물들이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을 때,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따라 순종하며 사역을 지속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본문을 통해 우리는 분열하는 지도자들의 모습과 그 안에서 순종하는 동역자들의 모습을 보며, 오늘날 우리의 신앙 생활에서 어떻게 갈등을 해결하고 협력할 수 있을지에 대해 깊이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본문의 개요 오늘 본문은 바울과 바나바가 1차 선교여행을 마치고 다시 한번 각 도시를 방문하려는 계획을 세우는 장면에서 시작됩니다. 바나바는 요한 마가를 데리고 가기를 원하고, 바울은 이전에 그가 도중에 떠난 일을 이유로 반대합니다. 이로 인해 두 사람 사이에 심한 다툼이 발생하고, 결국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구브로로 떠나고, 바울은 실라를 선택하여 소아시아 지역으로 떠납니다. 이후 바울과 실라는 루스드라에서 디모데를 만나게 되고, 디모데는 바울의 요청으로 할례를 받으며 그들의 동역자가 됩니다. 이들은 성령의 인도를 받아 여러 지역을 거치며 복음을 전합니다. 특히,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심을 깨닫고 마케도니아로 건너갑니다. 이 과정에서 바울은 밤에 환상을 보게...

사도행전 14장 19절-28절, 월요병을 극복하는 성경적 방법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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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4:19-28의 말씀에는, 바울과 바나바가 계속해서 교회를 세우고 안디옥으로 돌아온 장면과 안디옥 교회 성도들에게 선교 보고를 하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내용들을 보면, 고난 속에서도 바울과 바나바는 열정적으로 복음을 전했음을 깨닫게 됩니다. 본문 속의 바울과 바나바의 모습을 통하여,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일들을 마주할 때 가져야 할 우리의 마음 가짐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사도행전 14장 19절-28절, 월요병을 극복하는 성경적 방법 서론 사람은 자신의 소명을 발견하고 그 소명을 이루는 과정에서 기쁨과 행복, 보람을 얻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일을 주신 것은 축복이자 은혜입니다.  오늘 본문인 사도행전 14:19-28 중에는, 사도 바울이 루스드라에서 전도하는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합니다. 루스드라는 로마 식민지로 유대인 소수가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바울이 전도를 하자 유대인들이 집요하게 방해하였고, 이웃 마을 유대인들까지 합세하며 싸움이 치열해졌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물러서지 않고 전도를 계속하였습니다. 이에 격분한 유대인들이 바울을 돌로 공격하여 실신케 했고, 시외로 끌어냈습니다. 바울은 소명 의식을 갖고 전도 사역에 전념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고난과 시련도 겪었지만 기쁨과 보람을 얻었을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도 하나님께서 주신 소명을 발견하고 그것을 이루어가며 살아가는 기쁨을 누려야 합니다. 본론 오늘 본문에서는 사도 바울이 전도 중에 돌에 맞아 죽을 뻔한 사건을 상세히 설명합니다. 로마법에 따르면 시내에서 사람을 죽이는 것은 불가능했지만, 유대인들은 흥분하여 바울을 돌로 쳐 죽이려 했습니다. 바울은 심하게 다치고 기절했지만, 제자들은 그가 죽은 줄 알고 장례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일어나 30km 떨어진 더베로 걸어갔고, 거기서 많은 이들을 제자로 삼고 교회를 세웠습니다. 이 사건은 바울이 자신의 소명과 열정을 따라 행동한 결과입니다. 자신의 은사와 재능, 열정을 발견하고 ...

사도행전 14장 19절-28절, 1차 전도여행 보고서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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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매일성경 묵상 본문인 사도행전 14:19-28은, 바울과 바나바의 1차 전도여행의 결과를 안디옥 교회에 보고하는 내용입니다. 두 사도는 그간의 여정들과 그 속에서 겪었던 다양한 일들, 하나님의 능력을 증거하며 보고합니다.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요? 사도행전 14장 19절-28절, 1차 전도여행 보고서 서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저는 사도 바울과 바나바의 1차 전도 여행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그들은 사도행전 13장부터 15장까지 약 2년 동안 소아시아를 여행하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 여행은 초기 교회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이며, 우리에게 오늘날에도 여전히 많은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본론 오늘 본문에 나타난 바울과 바나바의 1차 전도여행 보고서를 통하여 우리가 알 수 있는 사실은 무엇일까요? 첫째, 여행 경로와 주요 사건 바울과 바나바는 안디옥 교회로부터 파송되어 구브로와 이고니온, 루스드라를 거쳐 소아시아 안쪽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들은 각 도시에서 회당에서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했으며, 많은 사람들이 믿음으로 돌아섰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또한 유대인 지도자들의 강한 반대에 직면했습니다. 이들은 바울과 바나바를 비방하고 폭력으로 협박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이고니온과 루스드라에서 일어난 일은 매우 위험했습니다. 이고니온에서는 바울과 바나바가 신으로 여겨져 숭배의 대상이 될 뻔했고, 루스드라에서는 돌에 맞아 죽은 줄 알고 버려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바울과 바나바는 굴하지 않고 계속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들은 각 도시에 교회를 설립하고 장로들을 세웠으며, 제자들을 가르치고 훈련했습니다. 또한 안디옥 교회로부터 온 예루살렘 사도들과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예루살렘 회의에 참석하기도 했습니다. 둘째, 1차 전도 여행의 결과와 의미 1차 전도 여행은 초기 교회의 성장에 큰 기여를 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수많은 사람들을 제자로 삼고, 소아시아 전역에 교회를 설립했습니다. 또한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임을 ...

요한복음 9장 1절-34절, 기적 후에 주신 사명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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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인 요한복음 9:1-34의 말씀에는, 나면서부터 보지 못하는 맹인이 예수님을 만나고 실로암에 가서 눈을 씻는 장면, 그리고 예수님을 시기한 유대인들이 맹인되었던 자를 심문하는 장면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기적 후에 맹인에게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에게 주신 사명이 무엇일까요? 요한복음 9장 1절-34절, 기적 후에 주신 사명 서론 초등학교 시절로 기억이 됩니다. 여름성경학교의 프로그램 중에, 천로역정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이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중에, 두 명 씩 짝을 지어 무덤이 있는 근처의 장소까지 갔습니다. 그 곳에는 이미 두세 팀이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무덤 옆에는 나무로 만든 두 개의 관이 놓여 있었습니다. 이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선생님께서 "이제부터 한 사람씩 이 관에 들어가서 60초 동안 죽은 사람이 되어 보겠습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살아 있지만, 관에 들어간다는 것이 너무나도 무서웠습니다. 두려움 속에서 관에 들어가 누웠더니, 관 뚜껑을 "쾅"하고 닫으시고 망치로 못질을 하는 소리까지 들렸습니다. 실제로 못을 박아서 봉인한 것은 아니지만, 관 뚜껑 소리와 망치 소리에 두려움도 잠시였습니다. 금방 주변이 숨소리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조용해 졌고, 저 역시 관 속에서 죽음이 무엇인지 잠시나마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경험하기 전에는 알 수 없습니다. 우리는 죽음을 먼저 경험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살아 있다는 사실, 하나님의 은혜로 오늘을 살아간다는 사실에 감사해야만 합니다.   본론 오늘 본문인 요한복음 9:1-34의 말씀에는 우리는 결코 경험해 보지 못한 고통을 겪었던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는 나면서부터 앞을 보지 못했던 사람으로, 어둠 속에 살아가다가 예수님을 만남으로 인해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복음에는 인과응보 법칙이 아닌 은혜의 법칙이 적용됨을 보여 줍니다. 제자들은 맹경의 원인을 죄의 탓으로 돌렸지만, 예수님은 이 사람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