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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6일 묵상] 이사야 35장 1절-10절, 사막에서 피어난 백합화를 보라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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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할 찬송 391장, 오 놀라운 구세주 / 182장 강물 같이 흐르는 기쁨 서론 지난 여름은 참 더웠습니다. 모두에게 힘들고 더운 여름이었지만, 점심 시간에 동네를 돌며 운동하는 저에게는 특히 더 힘든 더위였습니다. 단 100미터만 걸어도 땀이 줄줄 흘러 내리고 목이 탑니다. 가지고 간 500ml의 물병은 금방 바닥을 드러내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성도 여러분, 우리의 무더웠던 여름 날씨보다 기온이 더 높이 올라가는 곳이 시내 광야이고 유대 광야입니다. 그 광야를 걷는 이스라엘 백성을 떠올려 보십시오. 목이 타들어 갑니다. 며칠을 걸어 마침내 물을 찾았지만, 삼킬 수 없는 쓴물입니다. 사람들의 무릎이 꺾입니다. 손에서 힘이 빠집니다. 그런데, 우리의 하루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굳은 관절에서 뚝뚝 소리를 내며 먼저 반응합니다. 문을 나서면, 세상은 너무나 빠르게 변하고 요동칩니다. 쉼 없이 들려오는 전쟁이나 자연 재난, 다투는 소식들에 한숨이 납니다. 세상 속에서 이리저리 흔들리고 정신이 혼란스럽습니다. 또, 자녀들의 삶이 고달프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우리의 마음이 무너져 내립니다. 학교 생활을 어려워 하고, 직장 속의 갈등 소식을 듣습니다. 때로는 부모를 향한 자녀들의 무언의 원망도 마음으로 듣게 됩니다. 그럴 때면, 우리 마음이 물기 하나 없는 사막이 됩니다. 본론 하지만 오늘, 하나님은 이 절망의 사막 한가운데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메말라 쓰러지고 흔들리는 우리에게 참된 위로의 생수를 건네 주십니다. 1. 사막에 물이 터지고 굳은 무릎이 일어서다. 얼마 전까지, 영남 지방에 비가 내리지 않아서 논밭이 갈라졌었습니다. 그 갈라진 땅을 생각해 보십시오. 곡식들이 제대로 자라지 못합니다. 심한 곳은 작물들이 말라 죽어 갑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곳에 서시자, 모래를 뚫고 생수가 터져 나온다고 이사야는 말합니다. 헐벗은 골짜기에 백향목이 빽빽하게 솟아올라서 채웁니다. 메마른 흙 위로 백합화가 피어나게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은 ...

[6월 25일 묵상] 고린도전서 15장 12절-19절, 가장 불쌍한 사람이십니까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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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165장, 주님께 영광 새 찬송가 171장,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서론: 부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고요하고 복된 새벽에 하나님의 은혜 보좌 앞으로 한 걸음씩 차근차근 걸어 나오신 여러분 한 분 한 분을 진심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밤새 영육의 평안을 주신 하나님께서 오늘 아침에도 변함없이 신실하고 따뜻한 사랑으로 우리를 맞아주실 줄 믿습니다. 여러분! 세상은 언제나 우리에게 남들과의 경쟁에 대해 말합니다. 하지만, 이 새벽만큼은 주님 안에서 참된 안식을 누리기를 소망합니다. 우리가 서두르지 않고 한 번에 하나씩, 주님의 세밀한 음성에 귀를 기울일 때, 우리의 마음은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과 밝은 소망으로 가득 채워질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마음의 무릎을 꿇고  묵상할 본문의 핵심적인 내용은 ' 부활 '입니다. 기독교 신앙의 가장 찬란한 보물이자, 인간이 마주하는 가장 깊은 영적 절망을 영원한 소망으로 바꾸어 놓는 위대한 반전의 단어가 바로 부활입니다. 오늘 사도 바울이 전하는 본문의 복음 증언을 통해, 부활의 진리가 우리의 삶 속에 어떻게 은혜를 전해 주는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본론 1. 우리의 절망감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당시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직면했던 심각한 영적 위기이자 인간 실존의 어두운 절망감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당시 교회 안에는 헬라의 철학적 이성주의와 회의론에 갇혀, 사람이 죽으면 그것으로 끝이지 어떻게 육체가 다시 살아날 수 있느냐며 " 죽은 자의 부활은 없다 "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부활을 부정하는 이들의 논리를 격파하기 위해, 역설적으로 " 만약 너희 말대로 정말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면 어떻게 되겠느냐? "라는 비참한 가정을 세우고, 부활이 없을 때 마주해야 할 영적 절망의 원인들을 날카롭게 파헤칩니다. 본문 14절에서 바울은 단호한 어조로 선포합니다. 고린도전서 15:14,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

[6월 24일 묵상] 고린도전서 15장 1절-11절, 나의 나 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라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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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310장, 아 하나님의 은혜로 새 찬송가 435장, 나의 영원하신 기업 서론: 어두운 새벽을 밝히는 은혜의 빛 아직 어둠이 다 가시지 않은 이 새벽, 차가운 공기를 뚫고 주님의 제단 앞에 나오신 성도 여러분을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어제 하루 여러분의 삶은 어떠셨나요? 직장에서, 혹은 가정에서 마음먹은 대로 일이 풀리지 않아 조용히 한숨을 쉬며 베개에 머리를 묻지는 않으셨습니까? " 내가 정말 예수 믿는 사람답게 잘 살고 있는 걸까? " 하는 자책과 함께, 스스로가 초라하게 느껴져 무거운 마음을 안고 이 자리에 주저앉아 계시지는 않습니까? 우리의 일상은 늘 흔들림의 연속이고, 우리는 매번 자신의 연약함과 마주하며 살아갑니다. 성경을 보면 우리와 똑같이, 아니 우리보다 훨씬 더 처절하게 흔들리고 넘어졌던 인물들이 가득합니다. 새벽닭이 울기 전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했던 베드로, 그리고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짓밟고 믿는 이들을 잡아 가두는 데 앞장섰던 바울이 그랬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자신을 향해 아주 아프고도 솔직한 고백을 던집니다. 8절을 보면 자신을 "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나 "라고 표현합니다. 이 말은 태중에 온전히 자라지 못하고 칠삭둥이나 팔삭둥이처럼 미숙하게 태어난 아이라는 뜻입니다. 사도로서, 또 신앙인으로서 자신은 아무런 자격도 없고 도저히 쓸모없는 상태였다는 고백입니다. 우리가 하루를 시작할 때 느끼는 부족함, 무기력함, " 과연 하나님이 나 같은 사람을 사랑하시고 사용하실까? " 하는 그 깊은 자책감이 바로 바울이 마주했던 현실이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그 자책의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아 있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오늘 바울의 이 고백을 통해, 하나님께서 흔들리는 우리의 새벽을 어떤 소망으로 채우길 원하시는지 두 가지 믿음의 비밀을 마음에 담기를 바랍니다. 본론 1. 흔들리지 않는 복음의 반석 위에 서십시오. 첫째로, 우...

[5월 25일 묵상] 창세기 47장 13절-26절, 생명을 보전하게 하소서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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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 429장, 세상 모든 풍파 너를 흔들어 새 찬송가 : 428장, 내 영혼에 햇빛 비치니 서론: 우리 인생에 찾아오는 기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하루도 우리 주님의 평안이 여러분의 심령과 가정 가운데 가득하시기를 소망합니다. 우리가 험한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참 예상치 못한 인생의 기근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열심히 달려왔는데 갑자기 통장의 잔고가 줄어들어 앞날이 캄캄해지는 날이 찾아옵니다. 늘 강건할 줄 알았던 몸에 생각지도 못한 적신호가 켜져 마음이 덜컥 내려앉을 때도 있습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가장 가깝다고 믿었고 온 마음을 주었던 사람과의 관계가 하루아침에 메말라 버려, 마음이 한없이 가난해지고 외로워질 때가 참 많습니다. 성경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믿음의 조상들도 우리와 똑같은 기근을 겪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바로 그 ‘먹을 것이 없는 시대’, 온 땅이 바짝 메말라 버린 참혹하고 처절한 기근의 현장을 생생하게 보여 줍니다. 당시 요셉이 다스리던 애굽과 온 가나안 땅이 기근의 혹독한 고통 속에서 무너져 내리고 있었습니다. 돈이 바닥났습니다. 애지중지 기르던 가축들도 하나둘 사라졌습니다. 결국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자신들의 마지막 보루이자 목숨과도 같았던 땅까지 전부 내려놓아야 하는 절망적인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 모습이 꼭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삶의 모습과 닮아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그토록 의지하고 붙잡고 있던 세상의 것들이 하나씩, 하나씩 손가락 사이로 허무하게 빠져나갈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바로 그때 비로소 가던 길을 멈추어 서서, 인생의 가장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나는 지금 무엇으로 살고 있는가?” “내 인생을 지탱하는 진짜 힘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가?” 오늘 성경은 고통받는 백성들의 아우성을 통해 우리에게 아주 분명하게 말씀해 주십니다. 사람은 내가 가진 소유로 사는 존재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이 살려 주셔야만 살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이 새벽, 선포되는...

[3월 7일 묵상] 요한복음 11장 17절-27절, 죽음을 깨우는 선언,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라"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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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하는 찬송 새 찬송가 171장, 하나님의 독생자 새 찬송가 164장, 예수 부활 했으니 서론: 현대인이 외면한 죽음, 그 차가운 진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 사회에서 ' 죽음 '은 철저히 격리되고 소외된 단어입니다. 과거에는 집 마당에서 가족들의 손을 잡고 마지막을 맞이했다면, 이제 죽음은 병원의 하얀 벽과 기계 소리 가득한 중환자실, 그리고 차가운 장례식장 지하실로 숨어버렸습니다. 우리는 죽음을 마치 '나와는 상관없는 통계'처럼 취급하거나, 의학의 발달로 언제든 미룰 수 있는 '정복 대상'으로 여길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죽음이 우리 삶에서 보이지 않게 될수록, 죽음에 대한 공포는 더 기괴한 방식으로 우리를 짓누릅니다. 누군가는 죽음을 '완전한 소멸'로 보며 허무주의에 빠지고, 누군가는 죽음 이후의 불확실성 때문에 '지금 이 순간'의 쾌락에만 매몰됩니다. 특히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뒤 마주하는 ' 슬픔과 고통 '의 시간 중에 우리는 가장 깊은 절망을 경험하게 됩니다. "조금만 더 일찍 병원에 갔더라면", "그때 그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하는 후회는 현대인의 마음속에 거대한 상처와 구멍을 내기도 합니다. 본론: 절망의 자리에 임한 생명의 주 오늘 본문의 마르다 역시 이 현대적인 절망과 맞닿아 있습니다. 나사로가 죽은 지 이미 나흘, 유대인들의 관점으로 보면 영혼마저 몸을 완전히 떠나버린 '절대적 끝'의 시점입니다. 현대 의학이 사망 선고를 내리고 장례 절차가 끝난 것과 다름없는 이 절망의 현장에서, 우리는 "이미 늦었다"는 체념과 마주합니다. 여러분의 삶 속에도 이미 ' 마감 기한 '이 지나버려 악취가 나기 시작한 꿈이나 관계, 혹은 영적인 생명력이 있지는 않습니까? 오늘 주님은 그 차가운 무덤가로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1. "만약에"라는 과거의 감...

[12월 27일 묵상] 미가 7장 1절-13절, 사람에게 실망했을 때, 하나님이 주시는 위로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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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490장, 주여 지난 밤 내 꿈에 새 찬송가 542장, 구주 예수 의지함이 서론: 텅 빈 포도원을 거니는 마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간밤에 평안하셨습니까? 아직 밖은 어둡고 찬 공기가 감도는 이 새벽, 따뜻한 이불 속의 유혹을 이기고 기도의 자리에 나오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축복합니다. 사실 천근만근 무거운 몸을 이끌고 나온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 간절함이 있기에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특별한 은혜를 예비해 두셨으리라 믿습니다. 우리 옆에 계신 분들과 따뜻한 눈빛으로 인사 한번 나누실까요? "참 잘 오셨습니다. 주님이 오늘 당신의 힘이 되십니다." 이 새벽, 성도님들의 그 따뜻한 인사가 서로에게 위로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여러분, 몸의 피곤함보다 우리를 더 힘들게 하는 것은 어쩌면 마음의 허전함일지 모르겠습니다. 오늘 본문 1절에서 미가 선지자는 자신의 마음이 마치 "여름 과일을 딴 후와 같다"라 고 고백합니다. 풍성했던 포도 송이는 온데간데없고, 앙상한 가지만 남은 텅 빈 포도원. 먹고 싶어도 남은 열매가 없는 그 쓸쓸함이 바로 선지자의 마음이었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심정 아닐까요? 가족을 위해, 직장을 위해 열심히 산다고 살았는데 막상 손에 잡히는 열매는 없는 것 같은 허무함이 밀려올 때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믿었던 사람에게 받은 상처, 정직하게 살면 오히려 바보 취급 당하는 것 같은 억울함 때문에 속상한 적은 없으십니까? 세상은 갈수록 각박해지고, "내 마음을 진심으로 알아주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는 지독한 고독감이 우리를 찾아오기도 합니다. 본론 오늘 미가 선지자는 그 철저한 고독과 절망 속에서 기적 같은 반전을 노래합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 텅 빈 가슴을 부여잡고 나온 여러분의 심령에 하나님의 찬란한 새 아침이 밝아오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사람을 의지하면 무너집니다. 미가 선지자가 바라본 세상은...

[12월 24일 묵상] 미가 4장 1절-13절, 지금 고통은 해산을 위한 진통이다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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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550장, 시온의 영광이 빛나는 아침 새 찬송가 413장, 내 평생에 가는 길 서론: 어두운 새벽, 빛을 기다리며 성도 여러분, 현대 심리학 용어 중에 '램프 증후군'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마치 요술 램프의 요정을 불러내듯, 수시로 걱정거리를 끄집어내어 스스로를 괴롭히는 현상입니다. 그런데 심리학자 어니 젤린스키의 연구에 따르면, 우리가 하는 걱정의 실체는 이렇다고 합니다. 우리가 하는 걱정의 40%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일이고, 30%는 이미 지나간 과거의 일입니다. 여기에 별것 아닌 건강 염려가 12%, 사소한 고민들이 10%, 그리고 우리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일이 4% 라고 합니다. 이것들을 다 합치면 무려 96% 입니다. 즉, 우리는 인생의 96%를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두려움에 에너지를 낭비하며, 오늘 누려야 할 평안을 도둑맞고 사는 셈입니다. 우리가 진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고작 4% 뿐인데 말입니다. 오늘 새벽, 여러분은 어떤 걱정의 램프를 들고 오셨습니까? "끝이 보이지 않는 불경기," "자녀의 불확실한 미래," "나아지지 않는 건강," "관계의 단절." 이런 막막함과 불안이라는 생활 속의 불안들이 우리의 새벽을 짓누르고 있지는 않습니까? 뉴스를 틀면 전쟁과 다툼 소식뿐이고, 내 삶의 현장은 전쟁터 같습니다. 그러나 오늘 하나님은 미가 선지자를 통해 우리에게 놀라운 반전을 말씀하십니다. 3장까지만 해도 "예루살렘이 돌무더기가 될 것"이라던 하나님이, 4장에 들어서자마자 그 폐허 위에 세워질 영원한 영광을 보여주십니다. 오늘 이 말씀이 캄캄한 우리의 현실을 비추는 새벽별이 되기를 바랍니다. 본론 1. 하나님은 저는 자를 모아 강한 나라를 만드십니다. 본문 1절을 보십시오. "끝날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 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세상의 어떤 권력보다 하나님의 교회가, 하나님...

학개 2장 1절-9절, 나중 영광이 더 크리라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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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8일의 묵상 본문인 학개 2장 1-9절 새벽예배 설교문입니다. 과거 '이전 영광'과 비교하며 오늘의 연약함에 낙심하고 계십니까? 하나님께서는 '굳세게 하라, 내가 너희와 함께한다'라고 약속하고 계십니다. '나중 영광'은 예수님을 통해 완성되었습니다. 십자가와 부활로 참 성전이 되신 예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심을 믿고, 주님 안에서 위로와 평강, 소망을 붙드시기를 바랍니다. 학개 2장 1절-9절, 나중 영광이 더 크리라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210장, 시온의 영광이 빛나는 아침 새 찬송가 384장,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서론: '왕년'에 갇힌 시선 혹시 여러분! "아, 옛날엔 그랬는데… 왕년에는…" 하는 말을 자주 하십니까? 우리는 과거의 빛나는 성공이나 건강했던 모습을 떠올리며, 지금의 모습과 비교하며 마음이 작아질 때가 있습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과거에 뜨겁게 부흥했던 시절, 내가 건강하게 헌신했던 그 '왕년'을 떠올리며, 지금의 연약한 모습에 낙심할 수 있습니다. "이전의 영광은 다 어디로 갔나?" 하는 탄식이 나옵니다. 오늘 본문 학개서의 백성들이 정확히 그런 마음이었습니다. 그들은 포로 생활에서 돌아와 무너진 성전을 다시 짓기 시작했지만, 그들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너무나 초라했습니다. 본론 오늘 본문은 이처럼 과거의 영광과 초라한 현실 사이에서 절망하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시선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보여줍니다. 우리의 질문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보잘것없는 오늘 속에서, 어떻게 더 큰 영광을 약속하고 계십니까?" 1. '보잘것없는' 현실과 '함께하시는' 하나님 오늘 본문 3절은 " 너희 가운데에 남아 있는 자 중에서 이 성전의 이전 영광을 본 자가 누구냐... 이것이 너희 눈에 보잘것없지 아니하냐 "라고 묻습니다. 과거 솔로몬 성전의 화려함을 기억하...

역대하 36장 1절-23절, 절망의 끝에서 부르신 희망의 노래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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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31일의 매일성경 큐티 본문은 역대하 36장 1절-27절이며, 이 본문을 묵상하고 정리한 새벽설교문입니다. 유다의 마지막 왕들과 예루살렘 멸망은 하나님의 경고를 멸시하여 '고칠 방법이 없는' 상황에서 내려진 하나님의 심판이었음을 본문을 분명하게 기록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절망의 끝에서 이방 왕 고레스를 감동시키시고 70년 만에 회복을 명령하셨습니다. 죄의 포로된 우리를 부르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발견합니다. 역대하 36장 1절-23절, 절망의 끝에서 부르신 희망의 노래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270장, 변찮는 주님의 사랑과 새 찬송가 384장,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서론: "더 이상 고칠 방법이 없습니다." 성도 여러분, 살면서 "이제 정말 끝이다", "더 이상 고칠 방법이 없다"는 절망적인 선고를 들어보신 적이 있습니까? 의사가 환자에게 "손쓸 방법이 없습니다"라고 말할 때, 혹은 신용불량으로 모든 길이 막혔을 때, 관계가 돌이킬 수 없이 깨어져 버렸을 때, 우리는 깊은 절망을 경험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역대하 36장은 한 나라, 유다 왕국의 공식적인 '사망 선고'와 같은 말씀입니다. 한 장(章) 안에 무려 네 명의 왕이 스쳐 지나갑니다. 3개월짜리 왕, 11년짜리 왕... 그들의 공통점은 "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다 "는 것입니다. 나라는 기울고, 백성은 잡혀가고, 마침내 예루살렘 성전은 불타고 성벽은 무너집니다. 화려했던 역사가 피와 눈물로 얼룩진 채 끝이 나는 순간입니다. 왜 이렇게 비참한 끝을 맞이했을까요? 돈이 없어서일까요? 군사력이 약해서일까요? 성경은 그 이유를 16절에서 정확하게 진단합니다. 역대하 36:16, 그의 백성이 하나님의 사신들을 비웃고 그의 말씀을 멸시하며 그의 선지자를 욕하여 여호와의 진노를 그의 백성에게 미치게 하여 회복할 수 없게 하였으므로 '회복할 수 없다'는 말은 ...

스바냐 3장 1절-8절, 공의의 빛, 부패한 성을 심판하다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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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3일의 매일성경 큐티 본문인 스바냐 3장 1절-8절은, 부패하고 불의한 세상 속에서 침묵하시는 듯이 보이는 하나님을 묘사합니다. 하지만, 아침마다 빛을 비추시듯 부패한 세상에 비추시는 하나님의 공의를 선포하고 있으며, 하나님의 공의는 십자가에서 완성되었습니다. 말씀 묵상을 통하여 절망적인 현실 속에서 참된 소망과 은혜를 발견하고 설교문으로 정리하였습니다. 스바냐 3장 1절-8절, 공의의 빛, 부패한 성을 심판하다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280장, 천부여 의지 없어서 새 찬송가 258장, 샘물과 같은 보혈은 서론: 무너진 신뢰, 외면당한 말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었던 사울의 이야기를 아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무엘 선지자를 통해 사울에게 아말렉 족속을 진멸하라는 분명한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아이부터 가축까지, 그들에게 속한 모든 것을 남기지 말고 없애라는 단호한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나 전쟁에서 승리한 사울은 하나님의 명령을 온전히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는 아말렉 왕 아각을 살려두었고, 가장 좋고 기름진 양과 소들을 남겨두었습니다. 사무엘이 그의 불순종을 책망했을 때, 사울은 이렇게 변명했습니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행하였나이다.” 그러면서 남겨둔 가축들은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 함이니이다”라고 덧붙였습니다. 사울은 자신의 불순종을 ‘제사’라는 거룩한 종교 행위로 포장하려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보다 백성들의 눈치를 보고 전리품을 탐하는 마음이 더 컸지만, 그 탐욕을 경건의 모양으로 감추려 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가장 무서운 죄는 노골적인 반항이 아니라, 거룩의 옷을 입고 스스로를 속이는 위선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지도자들의 부패와 위선에 대한 소식을 너무나 자주 접합니다. 국민의 절반 이상이 우리 사회가 부패했다고 인식하고 있으며, 정치인과 공직자에 대한 불신이 팽배해 있습니다. 그들이 외치는 공의와 정의의 구호가 공허하게 들릴 때, 우리는 깊은 실망과 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