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벨이 바리새인인 게시물 표시

[3월 3일 묵상] 요한복음 9장 24절-41절, 내가 아는 한 가지, "맹인이었으나 이제는 보나이다"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이미지
함께 하는 찬송 새 찬송가 94장,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새 찬송가 524장, 갈 길을 밝히 보이시니 서론: 계급의 사다리와 영적 소경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 사회는 눈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계급의 사다리'로 촘촘히 엮여 있습니다. 연봉의 액수, 아파트의 브랜드, 자녀의 성적, 그리고 직장에서의 직급에 따라 사람의 가치를 매기고 서열을 나눕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더 높은 곳에 올라가 더 넓은 세상을 '내려다보는' 위치에 서기를 갈망합니다. 왜냐하면, 높은 곳에 올라갈수록 더 많이 알고, 더 정확히 보며, 더 정답에 가까운 삶을 살고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오늘 우리에게 충격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 당신이 보고 있다고 믿는 그 높은 곳의 시선이, 혹시 가장 중요한 진리를 가리는 안대가 되고 있지는 않습니까? " 본론 오늘 본문의 바리새인들은 당시 사회의 최상위 계급이었습니다. 그들은 율법이라는 지식의 정점에 서서 누구보다 하나님을 잘 안다고 자부했습니다. 반면, 날 때부터 맹인이었던 자는 사회적 계급의 가장 밑바닥, 즉 구걸 없이는 생존할 수 없는 철저한 소외 계층이었습니다. "우리 사회는 흔히 높은 직함과 화려한 배경을 가진 이들의 말을 진리로 여기지만, 정작 삶의 밑바닥에서 주님을 대면한 이의 투박한 고백이 진짜 인생의 답일 때가 많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의 지식과 지위라는 안경으로 예수를 정죄하려 하지만, 맹인이었던 자는 오직 빛으로 오신 예수만을 증언합니다. 오늘 이 새벽, 우리가 붙들고 있는 '세상의 안경'을 잠시 내려놓고, 우리를 찾아오시는 참된 빛 앞에 서기를 소망합니다. 1. 경험된 복음은 세상의 권위를 압도합니다. 바리새인들은 다시금 맹인이었던 자를 불러 심문합니다. 그들은 "우리는 이 사람이 죄인인 줄 아노라"(24절)며 지식적 권위로 예수를 낙인찍습니다. 그러나 맹인은 흔들리지 않고 답합니다. 25절을 우리 함께...

[3월 2일 묵상] 요한복음 9장 13절-23절, 안식일의 주인인가, 전통의 노예인가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이미지
함께 하는 찬송 새 찬송가 95장, 나의 기쁨 나의 소망 되시며 새 찬송가 359장, 천성을 향해 가는 성도들아 서론: ‘원래 그래왔다’는 전통의 감옥 우리 사회에는 ‘전통’이라는 아름다운 이름 아래 대물림되는 부정적인 관습들이 참 많습니다. 대학가의 가혹한 신고식, 직장의 경직된 서열 문화, 혹은 "우리 때는 다 그랬어"라며 불합리함을 정당화하는 태도들이 그렇습니다. 이러한 잘못된 전통의 특징은 ‘사람’보다 ‘형식’을, ‘생명’보다 ‘질서’를 우선한다는 점입니다. "원래 그래왔다"는 한마디는 모든 합리적인 의심과 변화의 노력을 잠재워 버립니다. 이러한 문화 속에서 개개인의 고통은 무시되고, 살아있는 혁신은 숨을 죽입니다. 본론 이러한 현상은 신앙의 세계에서도 예외가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바리새인들은 ‘안식일 전통’이라는 견고한 매뉴얼에 갇혀 있습니다. 날 때부터 맹인이었던 자가 눈을 떴다는, 인류 역사상 유례없는 경이로운 생명의 사건이 눈앞에 펼쳐졌음에도 그들은 기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안식일에 진흙을 이겼으니 그는 죄인이다"라며 정죄의 칼날을 휘두릅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눌 ' 인간의 근본적인 연약함 '인 영적 맹목과 고집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나만의 ‘ 영적 매뉴얼 ’을 만들어 놓고, 하나님께서 그 틀 밖에서 일하실 때 오히려 불편해하곤 합니다. 혹시 여러분의 삶 속에도 "내 신앙 경력으로는 이게 맞아", "우리 교회 방식은 이래야 해"라는 경직된 사고가 하나님의 새로운 역사를 가로막고 있지는 않습니까? 오늘 새벽, 우리를 가두고 있는 부정적인 전통의 담벼락을 허물고, 참된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만나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1. 법(Rule)에 갇혀 생명(Life)을 잃어버린 종교적 소경 바리새인들은 눈을 뜬 사람을 데려다가 심문하기 시작합니다. 그들의 유일한 관심사는 기적의 신비가 아니라 '안식일 규정 위반 ...

누가복음 19장 28절-48절, 어린 나귀를 타신 예수님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이미지
4월 6일 주일의 매일성경 큐티 본문인 누가복음 19장 28절-48절은, 예수님께서 어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만왕의 왕으로 이 땅에 오셨으나 겸손히 어린 나귀를 타셨습니다. 겸손과 평화의 왕이신 예수님을 큐티하고 새벽예배설교문으로 작성하여 나눕니다. 누가복음 19장 28절-48절, 어린 나귀를 타신 예수님 함께 하는 찬송 새 찬송가 452장, 내 모든 소원 기도의 제목 새 찬송가 50장, 내게 있는 모든 것을 서론 사순절 기간 중인 오늘 새벽 시간에, 우리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는 장면을 함께 묵상하고자 합니다. 왕의 행차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왕들처럼 화려한 병거나 위풍당당한 군마가 아닌, 작고 초라한 '어린 나귀'를 타셨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스가랴 선지자를 통해 예언된 그대로였습니다. 스가랴 9:9,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예수님은 왜 어린 나귀를 선택하셨을까요? 예수님이 어린 나귀를 선택하고 타신 이유는, 주님이 세상의 권세와 영광의 왕이 아닌, 겸손과 평화의 왕으로 오셨음을 온 세상에 선포하신 것입니다. 본론 예수님의 이 모습은 젊은 시절, 왕으로 기름 부음받기 전까지 아버지의 양을 치던 목동 다윗의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 다윗은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하나님을 향한 순전한 마음과 믿음으로 준비되었을 때 비로소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으로 세워졌습니다. 다윗이 그러했듯, 예수님께서는 가장 낮은 모습으로 오셔서 우리를 섬기시고 구원하시는 진정한 왕이십니다. 첫째, 겸손의 왕, 평화의 왕 오늘 본문에 의하면, 예수님께서 타신 나귀는 어떤 나귀라고 묘사하고 있습니까? 30절입니다. 누가복음 19:30, 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아직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가 매여 있는 것을 보...

누가복음 17장 20절-37절, 내 안에 임한 하나님 나라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이미지
3월 31일 월요일의 매일성경 큐티 본문은 누가복음 17장 20절-37절입니다.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가 언제 어디에 임할 것인가에 대한 사람들의 궁금증과 오해를 바로 잡으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는 미래에 있을 인자의 날에 대해 가르치셨습니다. 본문을 큐티하고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안에 임하였음을 새벽예배설교문으로 정리하고 나눕니다. 누가복음 17장 20절-37절, 내 안에 임한 하나님 나라 함께 하는 찬송 새 찬송가 491장, 저 높은 곳을 향하여 새 찬송가 493장, 하늘 가는 밝은 길이 서론 우리 인간은 누구나 마음 깊은 곳에 더 나은 세상, 더 완전한 행복, 참된 안식이 있는 곳을 갈망합니다. 다니엘과 같은 인물은 이국땅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 세상의 화려함과 위협 속에서 살았지만, 그는 마음 중심에 오직 하나님만을 왕으로 모시고 살았습니다. 그는 외부 환경이 어떠하든 흔들리지 않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따랐습니다. 그의 삶 자체가 바로 환경을 초월하여 '내 안에' 임한 하나님 나라의 능력을 증거하는 삶이었습니다. 본론 오늘 본문의 바리새인들도 하나님의 나라를 추구하며 살았습니다. 그들은 로마의 압제 아래 신음하며, 이 모든 고통을 끝내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줄 메시아의 왕국, 즉 '하나님의 나라'가 도대체 '어느 때에' 임할 것인지 예수님께 물었습니다(20절).  그들은 아마도 눈에 보이는 강력한 힘, 정치적인 해방, 그리고 세상의 질서를 뒤엎는 극적인 사건을 기대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대답은 그들의 기대를 완전히 뛰어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바리새인들을 경악하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놀라운 선언,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다'는 말씀의 깊은 의미를 함께 묵상하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내적인 관점으로 보아야 합니다. 바리새인들은 하나님 나라를 철저히 외적인 관점에서 이해했습니다. 그들은 눈으로 볼...

누가복음 14장 1절-14절, 하나님 나라에서 높아지려면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이미지
3월 22일의 매일성경 큐티 본문은 누가복음 14장 1절-14절입니다.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잔치의 아랫 자리에 먼저 앉을 것을 가르치시며, 겸손과 섬김에 대해 교훈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스스로 높아지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겸손히 섬기고 나누는데 있습니다. 본문을 큐티하고 새벽예배설교문으로 정리하였습니다. 누가복음 14장 1절-14절, 하나님 나라에서 높아지려면 함께 하는 찬송 새 찬송가 595장, 나 맡은 본분은 새 찬송가 465장, 주 믿는 나 남 위해 서론 오늘도 주님의 은혜와 평강이 여러분의 삶 가운데 가득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우리는 누가복음 14장 1절부터 14절 말씀을 통해 "하나님 나라에서 높아지려면 자신을 낮추어야만 한다"라는 귀한 진리를 함께 묵상하고자 합니다. 누가복음 15장의 탕자는, 아버지의 유산을 미리 받아서 자기 마음대로 살았습니다. 그가 많은 유산을 가지고 허랑방탕하게 쓸 때는 주변의 친구들이 많이 생겼고 그들에게 인정과 칭찬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에게 남은 것이 없을 때, 가짜 친구들은 모두 떠나고 말았습니다. 이후에 탕자는 자신의 형편을 깨닫고 겸손하게 아버지께 돌아갑니다. 그가 겸손하게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그를 영접하고 품꾼들 중에 하나가 아니라 둘째 아들의 지위로 다시 높여 주셨습니다. 낮아질 때 높임을 받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본론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한 바리새인 지도자의 집에서 음식을 잡수실 때의 이야기로 오늘 본문은 시작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겸손과 섬김의 중요성에 대해 설명하시는데, 하나님 나라에서 높아지고자 한다면, 스스로를 낮추고 섬겨야만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첫째, 끝자리에 앉으라 먼저, 본문 7절부터 11절에는 예수님께서 잔치 자리에 초대받은 사람들이 윗자리를 택하는 것을 보시고 하신 비유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잔치 자리에서 누가 더 높은 자리에 앉을까를 은근히 경쟁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인간의 본성을 꿰뚫어 보시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

누가복음 12장 1절-12절, 모든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을 두려워하라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이미지
3월 16일 주일의 매일성경 큐티 본문은 누가복음 12장 1절-12절로써, 모든 성도들이 두려워 해야 할 분이 누구이신가에 대해 설명해 주시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영혼까지 통제하시는 하나님을 두려워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본문을 큐티하고 새벽예배 설교문으로 정리하여 나눕니다. 누가복음 12장 1절-12절, 모든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을 두려워하라 함께 하는 찬송 새 찬송가 197장, 은혜가 풍성한 하나님은 새 찬송가 435장, 나의 영원하신 기업 서론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 말씀은 예수님께서 수많은 무리와 제자들에게 주신 가르침들 중에 한 부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본문의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참된 신앙의 본질이 무엇인지, 그리고 세상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가르쳐 주시고 계십니다. 특별히 오늘 이 새벽 시간에는 "모든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을 두려워하라"라는 주제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본론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은 율법의 외적인 규례를 철저히 지키는 것에 집중했습니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신앙생활을 했고, 그들의 내면은 위선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바리새인들의 모습을 "누룩"에 비유하며 경고하셨습니다. 누룩은 밀가루 반죽 전체에 퍼져 부풀어 오르게 하는 것처럼, 외식은 사람의 마음속에 숨어 있다가 결국 삶 전체를 부패하게 만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바리새인들의 누룩, 곧 외식을 주의하라고 당부하시며, 참된 신앙은 외적인 행위가 아닌 내면의 변화에서 시작됨을 강조하셨습니다. 첫째, 외식을 주의하라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외식하는 바리새인들, 종교 지도자들을 조심하라고 경고하셨습니다. 1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누가복음 12:1, 그 동안에 무리 수만 명이 모여 서로 밟힐 만큼 되었더니 예수께서 먼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바리새인들의 누룩 곧 외식을 주의하라 예수님께서 경고하시며 말씀하신 “외식”이라는 단어는, 헬라어...

누가복음 11장 37절-54절, 율법의 본질을 회복하십시오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이미지
3월 15일의 매일성경 큐티 본문은 누가복음 11장 37절-54절로, 단지 손을 씻지 않는다는 이유로 예수님을 부정하게 보는 바리새인과 종교 지도자들의 위선을 꾸짖으시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겉으로 보이는 정결함과 함께, 심령의 정결함을 회복하라고 강조하셨습니다. 본문을 큐티하고 새벽예배 설교문으로 정리하여 나눕니다. 누가복음 11장 37절-54절, 율법의 본질을 회복하십시오 함께 하는 찬송 새 찬송가 15장, 하나님의 크신 사랑 새 찬송가 308장, 내 평생 살아온 길 서론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의 초대를 받아 식사 자리에 가셨습니다. 바리새인은 예수님의 말씀에 감동받아 예수님을 존경하는 마음으로 초대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예수를 시험하고 책잡을 구실을 찾으려는 불순한 의도였을 가능성도 제기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의 마음을 꿰뚫어 보셨지만, 초대에 응하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사람들과의 교류를 피하지 않으셨습니다. 하지만 식사 자리에서 예수님께서는 손을 씻지 않으셨고, 이로 인해 바리새인과의 갈등이 시작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 예수님께서 당시 종교 지도자들을 어떻게 바라보셨는지, 그리고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인지 묵상해 보고자 합니다. 본론 예수님께서는 손 씻는 문제로 예수님을 비난하고 나선 바리새인들의 위선적인 종교 생활을 꾸짖으셨습니다. 그리고, 위선적인 종교 생활이 아닌 진실한 말씀 중심의 삶을 살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첫째,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도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이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하게 하지만, 그들의 마음은 탐욕과 악의로 가득 차 있다고 책망하셨습니다. 39절을 보십시오. 누가복음 11:39,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 바리새인은 지금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나 너희 속에는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도다 바리새인을 비롯한 종교 지도자들은, 물로 손은 씻었으나 악한 행동으로부터 마음은 씻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악은 탐욕과 선한 사람에 대한 악의였습니다.  주인이 ...

누가복음 6장 1절-11절, 안식일 논쟁을 통해 나타난 교훈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이미지
2월 22일 토요일의 매일성경 큐티 본문인 누가복음 6장 1-11절의 안식일 논쟁을 통해 예수님의 가르침을 연구한 설교문입니다. 바리새인들의 경직된 율법주의와 대조되는 예수님의 긍휼, 안식일의 참 의미를 제시합니다. 율법과 사랑, 형식과 본질 사이에서 균형 잡힌 신앙의 길을 모색하도록 돕고, 현대 사회에서도 적용 가능한 교훈을 제공합니다. 말씀을 통해 성숙한 신앙인으로 성장하도록 이끄는 설교문입니다. 누가복음 6장 1절-11절, 안식일 논쟁을 통해 나타난 교훈 함께 하는 찬송 새 찬송가 218장, 네 맘과 정성을 다하여서 새 찬송가 216장, 성자의 귀한 몸 서론 오늘 우리는 누가복음 6장 1절부터 11절까지의 말씀을 통해 ‘안식일 논쟁을 통해 나타난 예수님의 가르침’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본문은 안식일 논쟁이라는 사건을 통해 당시 종교 지도자들이었던 바리새인들의 경직된 모습과, 그들과는 너무나 대조적으로 인간의 연약함과 필요를 먼저 헤아리셨던 예수님의 가르침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자들이었지만, 오히려 율법의 본질에서 벗어나 형식적인 계율에만 얽매여 있었습니다. 그들은 안식일 규정을 문자적으로만 해석하고, 그 틀 안에서 사람들을 정죄하고 비판하기에 급급했습니다.  그들에게는 율법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렸고, 율법을 통해 드러내고자 하셨던 하나님의 마음, 즉 긍휼과 사랑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심지어 그들은 배고픔에 지쳐 이삭을 잘라 먹는 제자들의 행동을 율법을 어긴 것이라고 비난하며 정죄하는 냉혹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러한 바리새인들의 완악하고 경직된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가르침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보다 먼저 사람의 기본적인 필요, 즉 배고픔을 먼저 보셨습니다. 이는 율법을 무시하신 것이 아니라, 율법의 진정한 의미를 꿰뚫어 보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제정하신 것은 사람을 억압하고 얽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람에게 진정한 쉼...

신명기 5장 22절-33절, 영원히 복 받기를 원하노라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이미지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하나님께서는, 호렙 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언약을 맺으시며 복의 근원이 되는 말씀들을 선언하셨습니다. 매일성경 본문인 신명기 5:22-33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따뜻한 말씀이 기록되어 있음을 새벽예배설교로 정리하였습니다. 신명기 5장 22절-33절, 영원히 복 받기를 원하노라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168장, 하늘에 찬송이 들리던 그 날 새 찬송가 433장, 귀하신 주여 날 붙드사 서론 복은 우리의 인생 속에서 언제나 갈구하고 바라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복을 거부하는 사람은 없고, 복을 외면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내 인생에서 복이 넘칠 뿐 아니라, 자자손손 대대로 복이 가득했으면 좋겠다며 기도하고 바랍니다. 시편 150편의 첫 노래인 시편 1편은 "복 있는 사람"에 대한 말씀이며, 갈릴리 언덕에서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의 말씀을 통하여 "복 있는 사람은 이러한 사람들이다"라는 의미의 팔복을 선언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복 받기를 원하셨기 때문에 십계명의 말씀을 호렙 산에서 주셨라고 본문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본론 : 영원히 복 받기를 원하노라 오늘 본문인 신명기 5장 22-33절은 십계명을 주신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구절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사실을 배울 수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 말씀을 믿고 경외하라.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경외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서 죽을 것 같은 공포와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24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신명기 5:24, 말하되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영광과 위엄을 우리에게 보이시매 불 가운데에서 나오는 음성을 우리가 들었고 하나님이 사람과 말씀하시되 그 사람이 생존하는 것을 오늘 우리가 보았나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불 가운데서 큰 음성으로 십계명을 선포하실 때 두려워했습니다. 그들은 그 음성을 다시 들으면 죽을까 두려워, 모세가 하나님께 직접 말씀을 듣고...

마태복음 12장 9절-21절, 치유와 경계 - 매일성경 강해 주석 해설

이미지
매일성경 큐티 본문인 마태복음 12장 9절부터 21절까지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한 손 마른 사람을 고쳐주었다는 이유로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죽이려는 모의를 한 내용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곳 저곳을 다니시며 계속해서 병자들를 고쳐 주십니다. 본문의 주석입니다. 마태복음 12장 9절-21절, 치유와 경계 9절, 강해 주석 해설 거기를 떠나 ‘떠나다’의 뜻인 헬라어 동사 ‘메타바이노’의 일상적 의미는 ‘자리를 바꾸다’이지만 특별한 본문에서는 이야기를 화제나 그 이야기가 진행되던 장소와 시간 등이 전면적으로 바뀌었음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요 5:24, 요일 3:14에서는 사마에서 생명으로 옮기웠음을 나타낼 때 이 ‘메타바이노’를 사용하고 있다. 한편 본문의 평행구인 눅 6:6에 의하면 회당에서 손 마른 자를 고친 사건이 일어난 날은 밀밭에서 제자들이 이삭을 잘라 먹은 사건이 바로 그 안식일과는 다른 인식일 날로 보고(report)하고 있다. 따라서 마태가 사용한 ‘메타바이노’란 말과 누가의 기록에 의해 예수께서 회당에 들어가신 날이 같은 안식일이 아니라 또 다른 안식일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러한 시간의 공백과 장소 변경이 예수께서 유월절을 예루살렘에서 보내시고 거기를 떠나 갈릴리로 되돌아가신 여정(旅程)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그레스웰). 물론 ‘메타바이노’는 복음서의 다른 곳에서도(11:1, 15:29) 이미 ‘되어진 한 여정’을 나타내는데 사용되었으며, 요 7:3에서도 ‘여기를 떠나’의 뜻인 ‘메타베디 엔튜덴’이라고 하는 유사한 표현이 갈릴리에서 유다로 간 여행에 사용되고 있다. 여하튼 비록 이동된 장소가 과연 어디였는지 또 시간적으로 1-8절과 얼마만큼의 간격이 있는지는 확정적으로 단정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그 날이 바로 ‘안식일’이었으며 그것 때문에 논쟁이 발생되었다고 하는 사실이다. 저희 회당에 들어 가시니 본 장에서의 두 번째 사건인 손 마른 사람을 고치신 것과 그에 따른 논쟁의 무대(setting)가 된 ‘저희...

마태복음 12장 1절-8절, 안식일의 주인 - 매일성경 강해 주석 해설

이미지
매일성경 큐티 본문인 마태복음 12장 1절부터 8절까지의 말씀은, 유대인들에게 매우 중요한 날인 안식일의 주인이 예수님이심을 선포하신 본문입니다. 제자들은 안식일에 밀 이삭을 잘라 먹었고, 예수님은 안식일의 주인이 자신이라고 선포하신 본문의 주석과 해설입니다. 마태복음 12장 1절-8절, 안식일의 주인 1절, 강해 주석 해설 그 때에 … 안식일에 이삭이 익은 것으로 미루어 보아 예수께서 돌아가시기 일년 전 4월의 유월절과 밀추수를 기념하는 칠칠절(태양력으로는 5-6월에 해당)의 중간 어느 한 안식일이다. 그런데 이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안식일을 취하신 날로서, 율법에는 이 날을 기념할 것과 쉴 것을 동시에 명하고 있다. 만약 이 명령을 어기는 자에게는 죽음과 같은 극단의 형벌이 예비되어 있었다(출 20:9 ff, 31:14 ff, 신 5:12 ff). 밀밭 사이로 가실새 먼저 랑게(Lange)에 의하면 전답(田畓)으로, 루터(Luther)에 의하면 곡식으로 이해되고 있는 ‘밀밭’(스포리모스)은 파종한 밭 혹은 곡식 밭으로 이해되며, 그중에서도 특별히 ‘보리밭’으로 해석 될 때가 많다. KJV에서는 ‘곡식밭’(grainfieled)으로 번역하고 있다. 한편 본문에 언급된 바 제자들이 이삭은 잘라 먹은 일에 대한 시비가 논쟁의 초점으로 대두된 것으로 보아 이때 예수의 사건은 바리새인들이 규정하고 있는 안식일에 여행할 수 있는 거리(약 1.8 km) 내에서 발생한 것이 분명하다. 한편 그 당시 팔레스타인에 있는 경작지들은 대부분 길고 좁다란 이랑으로 되어 있었는데, 그 이랑 사이의 땅이 사람이 지나다니는 통로로 활용되었다. 제자들이 사장하여 그 당시 제자들은 안식일의 그지 조항을 간과해 버릴 만큼 몹시 배가 고파 있었던 것이다. 이는 그 당시 예수의 선교활동이 매우 활발하고도 촉급하게 진행되고 있었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이삭을 잘라 먹으니 율법에 의하면 이 행위는 추수하는 것과 동일한 일로 간주되었다. 한편 평행구인 눅 6:1에 보면 ‘손으로 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