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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2일 묵상] 사사기 20장 29-48절, 명령 따라 순종하는 복병이 되십시오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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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20장 29-48절, 명령 따라 순종의 복병으로 엎드리십시오 사사기 20장 29-48절을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 설교를 위한 성경 본문 연구 보고서 사사기 20장 29-48절, 상처를 덮는 승리의 하나님 - 매일성경 큐티 10분 새벽설교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212장, 겸손히 주를 섬길 때 새 찬송가 449장, 예수 따라가며 서론: 기브아의 높은 언덕과 무너진 우리의 계산 지금껏 인생을 살아오면서, 우리는 산전수전 겪으며 나름대로 삶의 요령도 생겼고 옳고 그름을 가리는 눈도 갖추었다고 여깁니다. 그런데 살아가면 갈수록 내 뜻대로 안 되는 일이 많아진다는 느낌이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자식 문제는 왜 마음대로 해결되지 않습니까? 부부 관계는 왜 여전히 삐걱거립니까? 내가 맞고 상대가 틀렸는데 왜 내 영혼은 상처투성이가 되고 맙니까? 제가 이스라엘에 살던 시절, 집 근처 ‘베이트 하니나’라는 아랍 사람들이 사는 마을의 ‘텔-엘-풀’ 언덕을 자주 찾았습니다. 꼭대기에는 1967년 3차 중동전쟁 직전 요르단 후세인 왕의 미완성 여름 별장 골조가 흉물스럽게 서 있는데, 그곳이 성경의 기브아입니다. 사방이 내려다보여 아래에서 기어오르는 군사를 공격하기 딱 좋은 요새입니다. 베냐민 지파에게는 이 지형적 장점이 있었습니다. 반면 이스라엘 총회군은 40만 대군이었고 명분도 옳았습니다. 당연히 이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1차와 2차 전투에서 도합 4만 명이 피를 흘리며 쓰러졌습니다. 지형의 험준함도 잊은 채, 내 힘만 믿고 고집부린 이스라엘이 완전히 패배했던 현장이었습니다. 본론: 명령에 순종했을 때 승리한 이스라엘 1. 허물어지는 인간의 열심 이스라엘은 이해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죄를 지은 쪽은 베냐민인데, 공의를 세우겠다며 칼을 뺀 자신들이 왜 참패해야 하는지 원망이 치밀었을 것입니다. 우리 인생도 비슷합니다. 가족을 위해 헌신했고 땀 흘려 봉사했는데 왜 내 뜻대로 안 되느냐고 묻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신 것은 이스라엘의 분노 뒤에 숨은 교만이었습니다...

[10월 11일 묵상] 사사기 20장 8-28절, 결론을 내리고 묻고 있지는 않습니까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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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20장 8-28절, 결론을 내리고 묻고 있지는 않습니까 사사기 20장 8-28절을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 설교를 위한 성경 본문 연구 보고서 사사기 20장 8-28절, 나의 힘을 포기하는 엎드림의 시간 - 매일성경 큐티 10분 새벽설교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312장, 너 하나님께 이끌리어 새 찬송가 425장,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서론: 응답을 구하지만 묻지 않는 우리 오늘도 우리는 하나님 앞에 여러 가지 내용들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저도 새벽에 하나님께 간구하기 위한 기도의 제목들을 생각하고 준비하고 나왔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하나님께 기도하는 자리에 나오면서, 하나님께 묻기보다는 이미 내 생각이 꽉 차 있을 때가 많습니다. 기도의 자리에 앉자마자 막힘없이 내가 정한 청구서부터 하나님께 내밀지는 않습니까. 자녀의 혼사나 취직, 은퇴 후의 거처, 마음에 차지 않는 교우와의 갈등에서 내가 취할 행동까지 이미 결론을 다 내놓은 채 앉아 있습니다. 젊은이들이 쓰는 말 중에 답을 미리 정해놓고 묻는다는 '답정너'라는 속어가 있지요. 낯부끄럽지만, 매일 새벽마다 우리가 기도의 자리에 나와서 보이는 모습이 '답정너'일 수도 있습니다. 주님의 뜻을 구한다면서도 내 마음에 드는 응답만 하나님께 조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면서도 삶의 운전대는 넘겨주지 않는 고집, 오늘 본문의 이스라엘 사십만 군대가 꼭 그랬습니다. 형제인 베냐민 지파의 기브아 땅에서 차마 입에 담기 힘든 끔찍한 사건이 터졌습니다. 이스라엘 총회는 거룩함을 지키겠다는 의분으로 미스바에 모여, 제비뽑기로 전투병을 추리고 보급 부대까지 조직했습니다. 군사와 보급 계획을 제 머리로 다 짜놓고서야 벧엘로 올라갔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음성을 듣기 위함이 아니라, 자신들이 이미 결정해 놓은 전쟁에 대한 요식 행위였습니다. 본론: 깨어지는 자기 의와 십자가의 온전한 굴복 1. 계산된 열심과 패배한 40만 대군 그들이 벧엘에 올라가 하나님께 드린 질문의 핵심을 보...

[10월 10일 묵상] 사사기 20장 1-7절, 칼을 뽑기 전에 먼저 무릎을 꿇었는가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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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20장 1-7절, 칼을 뽑기 전에 먼저 무릎을 꿇었는가 사사기 20장 1-7절을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 설교를 위한 성경 본문 연구 보고서 사사기 20장 1-7절, 분노가 아니라 십자가를 바라보십시오 - 매일성경 큐티 10분 새벽설교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214장, 나 주의 도움 받고자 새 찬송가 364장, 내 기도하는 그 시간 서론: 분노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일부의 사회학자들은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를 "분노 시대"로 정의를 내립니다. 도로 위에서 운전자들은 분노 속에서 운전하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정치 속에도 분노가 가득 차 있고, 가정에도 분노가 있습니다. 교회 안에도 나와 생각이 다르면 거부하고 분노하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너무나도 쉽게 분노하고 다투는 모습을 우리 주변에서 자주 목격하고, 나 자신도 분노하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상대방의 해명에는 관심이 없고 듣지도 않으며, 내 생각과 내 감정만을 중시하면서 분노하고 미워하고 증오하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 속의 이스라엘 총회도 자신들의 감정에만 충실하였습니다. 사건의 전후를 따지지도 않고 하나님께 묻지도 않았습니다. 레위인의 첩이 참혹하게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에 온 이스라엘 지파가 단에서 브엘세바까지 일어났습니다. 미스바에 집결한 군사만 무려 사십만 명이었습니다. 성경은 그들이 “여호와 앞에” 모였다고 증언합니다. 겉모습만 보면 불의를 참지 못해 달려 나온 거룩한 영적 각성을 한 것 같습니다. 기브아의 패륜을 심판하겠다며 피를 흘릴 기세로 칼을 빼어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 거대한 총회 뒤에 숨은 실상을 들여다보면 너무나도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사십만 명이 모여 피 끓는 의분을 쏟아내면서도, 그 자리에서 하나님을 향해 무릎을 꿇는 사람이 사십 만명 중에 하나도 없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하나님께 엎드려 묻는 간절한 기도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본론: 내 소견을 꺾으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있습니다 1. 자기 의(義)에 취해 칼을 빼어 들다. 총회 한복판으로 걸...

[10월 9일 묵상] 사사기 19장 22-30절, 소돔과 고모라와 무엇이 다릅니까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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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19장 22-30절, 소돔과 고모라와 무엇이 다릅니까 사사기 19장 20-30절을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 설교를 위한 성경 본문 연구 보고서 사사기 19장 22-30절, 나의 참된 왕은 누구입니까 - 매일성경 큐티 10분 새벽설교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280장, 천부여 의지 없어서 새 찬송가 144장, 예수 나를 위하여 서론 오늘 본문을 설교해야 할 때에는, 항상 저의 속이 답답했습니다. 솔직히 본문은 설교하지 않고 넘어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 한가운데 왜 이런 역겨운 범죄 실화가 빠짐없이 박혀 있는지, 참 고민이 됩니다. 본문 속에는 나그네를 맞이한 집을 에워싸고 문짝을 두들겨 패는 불량배들, 그리고 방 안에 틀어박혀 제 목숨 하나 건지겠다고 벌벌 떠는 남자들이 나옵니다. 어디서 많이 본 그림 아닙니까? 네, 창세기 19장의 소돔과 고모라입니다. 롯의 집 문지방을 뜯어내려던 소돔의 불량배들과 기브아 사람들이 소름 돋도록 똑같습니다. 소돔 사람들은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 족속이었습니다. 하지만 기브아는 베냐민 지파의 땅입니다. 하나님이 홍해를 가르고 만나를 먹여 살리신 언약 백성들이 살던 성읍입니다. 겉으로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그럴듯한 간판을 달아놓고, 뚜껑을 열어보니 소돔보다 나을 게 전혀 없었습니다. 오늘 이 참담한 민낯을 우리가 직접 소리 내어 읽어 보라고 하나님은 성경 속에 기록해 두셨습니다. 그리고, 평생 하나님을 섬겼다고 자부하지만, 사실은 소돔과 고모라와 무엇이 다르냐고 묻습니다. 이 질문 앞에서 오늘 우리도 숨을 곳이 없습니다. 본론 1. 악한 사람들, 비겁한 사람들 문밖에서 폭도들이 날뛸 때, 집주인 노인은 기가 막힌 제안을 던집니다. 24절입니다. 사사기 19:24, 보라 여기 내 처녀 딸과 이 사람의 첩이 있은즉 내가 그들을 끌어내리니 너희가 그들을 욕보이든지 너희 눈에 좋은 대로 행하되 오직 이 사람에게는 이런 망령된 일을 행하지 말라 하나 처녀 딸과 레위인의 첩을 대신 끌어낼 테니 너희 눈...

[10월 7일 묵상] 사사기 19장 1-10절, 그 저녁, 서둘러 길을 떠나지 못한 우리에게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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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19장 1-10절, 그 저녁, 서둘러 길을 떠나지 못한 우리에게 사사기 19장 1-10절을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 설교를 위한 성경 본문 연구 보고서 사사기 19장 1-10절, 떠나야 할 순간에 머물고 있습니까 - 매일성경 큐티 10분 새벽설교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214장, 나 주의 도움 받고자 새 찬송가 461장, 십자가를 질 수 있나 서론 새벽에 예배의 자리로 나오는 우리의 모습, 그리고 집으로 들어가는 순간의 우리의 모습은 어떻게 다를까요?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마주치는 남편의 무심한 눈길에 속에서부터 무언가 치밀어 오르지 않습니까? 소파에 누워 TV만 보는 남편을 보며 혀를 차고, 남편은 밥그릇 내려놓는 소리에도 날을 세우는 아내를 보며 입을 닫지 않습니까? 수십 년을 함께 살았으니 다 안다고 하지만 속마음은 굳게 닫힌 철문 같은 경우들이 많습니다. 자식의 섭섭한 말 한마디에 며칠씩 가슴을 닫고, 자존심에 상처 하나 나면 몇 달을 꽁한 마음으로 살아갑니다. 남 이야기가 아닙니다. 저부터 그렇습니다. 강단에서는 사랑하라 외치지만, 집에 돌아가 사소한 일로 부딪히면 옹졸한 자존심을 꺾지 못해 며칠을 입을 닫습니다. 겉은 그럴듯한데, 속은 무너져 있을 뿐입니다. 본론 오늘 사사기 19장의 레위인의 모습이 이같은 우리의 영적 민낯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거룩해야 할 레위인이 첩을 두었고, 그 첩이 도망치자 넉 달이나 방치하다 뒤늦게 찾아가 ‘다정하게 말했다’고 합니다. 얼핏 로맨스 같지만, 체면과 이기심으로 얼룩진 비겁한 미봉책일 뿐입니다. 오늘 본문은 겉만 그럴듯하고 속은 무너져 있는 우리의 비겁한 관계를 정면으로 비춥니다. 1. 허물어지는 인간의 열심 레위인이 장인의 집에 도착했을 때 벌어지는 일을 보십시오. 장인은 사위를 반기며 사흘 동안 먹고 마십니다. 넷째 날에도, 다섯째 날에도 장인은 먹고 마시며 머물라고 사위를 붙잡습니다. 5절을 제가 읽겠습니다. 사사기 19:5, 넷째 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떠나고자 하매 그 여자의 아버지...

[10월 6일 묵상] 사사기 18장 21-31절, 조용히 해, 안 그러면 다친다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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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18장 21-31절, 조용히 해, 안 그러면 다친다 사사기 18장 21-31절을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 설교를 위한 성경 본문 연구 보고서 사사기 18장 21-31절, 불안해서 쥐어짠 힘이 인생을 무너뜨릴 때 - 매일성경 큐티 10분 새벽설교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150장, 갈보리산 위에 새 찬송가 461장, 십자가를 질 수 있나 서론 살면서 언제 가장 화가 치솟습니까? 내 뜻대로 일이 안 풀릴 때입니다. 뒷바라지한 자식이 내 뜻과 다른 길을 가거나, 수십 년 함께 산 배우자가 내 마음을 몰라줄 때 불쑥 목소리가 커집니다. 내가 어떻게 했는데 감히 나를 무시해? 서운함과 분노가 턱밑까지 차오릅니다. 나이 들수록 사회적 힘이 줄어들면 통제에 대한 집착은 오히려 더 독해집니다. 내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뭘 꺼내 듭니까? 매서운 눈빛, 차가운 침묵, 상대를 죄인 만드는 독설입니다. 완력으로 꽉 쥐어짜는 강압입니다. 교회 안에서도 내 신앙 연조와 직분을 앞세워 사람들을 쥐고 흔들려 합니다. ‘다 너 잘되라고 하는 말’이라 포장하지만, 실상은 내 손에 쥐어야 직성이 풀리는 통제욕입니다. 뜻대로 안 되면 폭력적인 강압을 휘두르는 것, 이것이 감출 수 없는 우리의 민낯입니다. 본론 1. 힘으로 세운 인간의 탑은 반드시 허물어집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우리의 밑바닥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단 지파는 하나님께 약속받은 땅이 있었지만, 아모리 족속이 두려워 싸워보지도 못하고 산지로 쫓겨났습니다. 사명 앞에서 도망쳤던 그들이 어디로 눈을 돌립니까? 북쪽 변방에서 평화롭게 살던 힘없는 라이스 족속이었습니다. 무장한 육백 명이 미가의 집을 들이쳐 신상과 에봇을 쓸어 담고 제사장까지 가로챕니다. 힘으로 남의 것을 약탈한 것입니다. 신상을 빼앗긴 미가가 이웃들과 쫓아와 울부짖습니다. 24절에서 미가는, “너희가 내가 만든 신들과 제사장을 빼앗아 갔으니 내게 이제 남은 것이 무엇이냐?”라고 호소합니다. 은을 녹여 만든 신상이 인생을 지켜줄 줄 알았는데, 힘센 자들이 빼앗...

[4월 8일 묵상] 요한복음 21장 15절-25절,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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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314장,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새 찬송가 323장, 부름 받아 나선 이 몸 서론: 실패의 밤이 지나고 찾아온 은혜의 새벽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고요한 새벽, 주님의 전을 찾은 여러분의 마음은 어떠하십니까?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우리는 새로운 소망을 품기도 하지만, 때로는 어제 무너졌던 나의 연약함 때문에 무거운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기도 합니다. 직장 생활의 쳇바퀴 속에서 겪는 깊은 '번아웃(Burnout)', 가정에서 남편과 아내, 혹은 자녀에게 쏟아낸 날 선 감정들로 인한 후회, 그리고 '내가 과연 진짜 그리스도인답게 살고 있는가?' 하는 뼈아픈 ' 자격지심 '과 ' 죄책감 '이 우리를 짓누를 때가 많습니다. 오늘 본문이 펼쳐지는 디베랴 바닷가(갈릴리 호수) 역시, 이처럼 짙은 절망과 실패의 냄새가 배어 있는 현장이었습니다. 역사적으로 이곳은 약 3년 전, 예수님께서 처음으로 제자들을 부르셨던 영광스러운 소명의 자리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베드로와 일곱 제자들은 그 영광을 뒤로한 채 옛 직업인 어부로 돌아가 밤새 그물을 던지고 있습니다. 수제자였던 베드로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도망쳤고, 대제사장의 뜰에 피워진 숯불 앞에서는 예수님을 저주하며 세 번이나 부인했습니다. 그 치명적인 영적 실패와 연약함이 베드로를 짓눌렀고, 스스로를 사명자의 자리에서 파면시켜 갈릴리의 밤바다로 숨어들게 한 것입니다. 우리 역시 내 안의 죄악과 연약함을 마주할 때, 하나님을 피하여 영적인 도피처로 숨으려는 본능이 있습니다. 본론 그러나 밤이 새도록 아무것도 잡지 못한 그 텅 빈 바닷가, 가장 춥고 외로운 그 새벽에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먼저 찾아오셨습니다. 친히 숯불을 피우고 조반을 지어 기다리신 주님은, 오늘 이 새벽 예배의 자리에 상한 심령을 안고 나온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다가오십니다. 실패한 우리를 찾아오셔서 다시 일으켜 세우시는 주님의 세밀한 음성을 듣는 아침이 되기를 소망합...

[3월 23일 묵상] 요한복음 15장 18절-27절, 세상의 미움을 이기는 힘, 성령과 제자의 증언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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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342장, 너 시험을 당해 죄 짓지 말고 새 찬송가 350장, 우리들이 싸울 것은 서론: 세상의 인정과 타협의 유혹 서기 155년경, 소아시아 서머나 교회의 위대한 영적 지도자였던 폴리갑(Polycarp) 감독은 결국 순교 하게 됩니다. 당시 로마 제국은 기독교인들에게 황제 숭배를 강요하며 극심한 핍박을 가했습니다. 로마 군인들에게 체포되어 원형 경기장의 화형대 앞에 선 86세의 노감독 폴리갑을 향해, 로마 총독은 그의 고령을 동정하며 이렇게 회유했습니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소. 그대의 나이를 생각하시오. 황제 가이사를 주(主)라 고백하고 예수를 저주하시오. 그러면 당장 당신을 살려주겠소." 그러나 군중들의 광기 어린 함성과 활활 타오르는 불길 앞에서도 폴리갑은 역사에 남을 위대한 신앙 고백을 던집니다. "지난 86년 동안 나는 그분을 섬겨왔소. 그리고 그동안 주님은 나에게 단 한 번도 부당하게 대하신 적이 없소. 그런데 내가 어찌 나를 구원하신 나의 왕, 나의 구주를 모독할 수 있단 말이오!" 결국 폴리갑은 끝까지 신앙의 절개를 지키며,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영광스러운 순교의 제물이 되었습니다. 본론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오늘날 폴리갑처럼 목숨을 위협받는 화형대 앞에 서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매일의 일상 속에서 세상의 '미움과 소외'라는 또 다른 교묘한 화형대 앞에 서 있습니다. 치열한 직장생활과 복잡한 인간관계 속에서, 세상의 방식과 적당히 타협하지 않으면 마치 나만 손해 보고 왕따가 되어 고립되는 것 같은 두려움을 느낄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는 누구나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인정받기를 원합니다. 미움받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이 복음을 전할 때 세상이 환영할 것이라는 장밋빛 환상을 무참히 깨뜨리시고, 오히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할 것'이라고 매섭게 경고하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겪는 세상의 미움의 이유와,...

[3월 22일 묵상] 요한복음 15장 1절-17절, 참 포도나무이신 예수님과 열매 맺는 제자의 삶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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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292장, 주 없이 살 수 없네 새 찬송가 90장, 주 예수 내가 알기 전 서론: 화병의 꽃과 영적 탈진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누군가에게 축하받을 일이 생기면 우리는 아름답게 포장된 꽃다발을 주고받습니다. 예쁜 화병에 꽂아둔 장미꽃을 보면 참 화려하고 생기가 넘쳐 보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그 꽃의 결말을 알고 있습니다. 며칠 지나지 않아 잎이 시들고 바싹 말라 결국 쓰레기통에 버려지게 됩니다. 당장 겉보기엔 화려해 보여도, 생명의 공급원인 '뿌리'로부터의 연결이 끊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영적 생활도 이와 똑같습니다. 많은 성도님들이 내 노력과 내 결심으로 신앙의 화려한 꽃을 피워보려 애씁니다. 그러나 생명이신 주님과의 충전 케이블이 뽑혀버린 '화병의 꽃'과 같은 상태로는 세상을 이길 수 없습니다. 내 힘으로 버티려다 금세 에너지가 방전되어 심한 영적 탈진, 즉 번아웃(Burnout)을 경험하고 맙니다. 오늘 예수님은 십자가 고난을 앞두고 다락방에서 제자들에게,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 결코 시들지 않는 영원한 생명의 비결을 말씀하십니다. 참 포도나무이신 예수님을 통해 어떻게 우리가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는지 함께 나누겠습니다. 본론 1. 농부이신 아버지의 가지치기 첫째로,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가 더 많은 열매를 맺도록 애정 어린 '가지치기'를 하십니다. 본문 1절에서 예수님은 무엇이라고 선언하십니까? 우리 함께 읽겠습니다. 요한복음 15:1,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농부이신 하나님의 유일한 관심은 가지인 우리가 더 건강하고 풍성한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은 때로 아프지만 필수적인 작업, 바로 '가지치기'를 하십니다. 우리의 삶에 찾아오는 원치 않는 고난, 물질의 어려움, 건강의 적신호, 관계의 갈등은 때로 우리를 고통스럽게 합니다. 그러나 이 시련은 우리를 죽이려는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교만하게 뻗어 나간 헛된 욕망의 잔가지들을 잘라...

[3월 16일 묵상] 요한복음 13장 1절-17절, 허리에 수건을 두르신 예수님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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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213장, 나의 생명 드리니 새 찬송가 461장, 십자가를 질 수 있나 서론: 우리 삶의 먼지를 아시는 주님 어제 우리는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애타는 마음으로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다" (요 12:46)라고 외치셨다는 사실을 보았습니다. 십자가를 앞에 두고 예수님은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하시기 위해 애타는 심정으로 사람들에게 공개적으로 외치셨던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특별히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는 겸손과 섬김의 주님을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오늘 이 새벽, 여러분의 '발'은 어떤 상태입니까? 하루 종일 딱딱한 구두 속에서, 혹은 분주한 일터의 현장에서 우리의 무게를 온전히 지탱해 온 발은 늘 피곤에 절어 있습니다. 퇴근 후 양말을 벗었을 때 느껴지는 그 눅눅함과 냄새는, 우리가 세상을 치열하게 살아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동시에 지쳐 있고 냄새 나는 나의 발은 누군가에게 내보이기 가장 부끄럽고 추한 부분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화려한 겉모습과 성과를 보여주고 싶어 하지만, 정작 우리 삶의 가장 낮은 곳에 쌓인 먼지와 허물은 깊이 감추고 싶어 합니다. 본론: 낮아짐으로 완성하신 사랑의 드라마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이 거대한 반환점을 도는 순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2장까지가 세상을 향한 외침이었다면, 이제 13장부터는 '자기 사람들' 을 향한 지극히 개인적이고도 깊은 사랑의 고백이 시작됩니다. 유월절 전날 밤, 십자가의 죽음이라는 거대한 공포가 눈앞에 닥쳤음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제자들의 가장 부끄러운 부분인 '발'에 주목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 예수님께서 허리에 두르신 수건을 통해, 우리 영혼의 묵은 때를 씻기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만나고자 합니다.   1. 끝까지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사랑 예수님은 자신이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을 아셨습니다. 이 긴박한 운명의 시간 앞에서 성경은 놀라운 ...